2017년 막걸리 업계는 정부의 과음경고 규제로 몸살을 앓았다. 포장재에 정부가 지정한 과음경고 문구를 넣어야 하는데, 같은 내용을 앞뒤 순서만 바꿔 다시 표기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영세 막걸리 제조사들은 기존에 발주했던 포장재를 폐기하는 바람에 수억원의 손실 위기에 처했다.


2015년 정부는 순대·떡볶이가 국민 간식이라며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HACCP) 인증을 받으라고 요구했다. 1400여개 업체가 대상이었는데 대부분 규제준수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들의 80%가량이 연 매출 1억원 이하 영세매장이었지만, 규제준수에 필요한 비용은 최소 2000만원으로 추산됐다.

국민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규제와 혁신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규제의 차이는 뭘까. 책 ‘좋은 규제의 조건’은 오랫동안 규제 문제를 고민해 온 전문가 8인이 만든 규제 나침반이다. 국민 전체의 이익과 예측가능성, 과학적 증거, 의견수렴 등 13가지 근거를 토대로 좋은 규제를 가름하기 위한 지침을 구체적인 사례들과 함께 제시했다.


시민을 위한 규제 가이드북을 만든 배경에는 규제강국이 돼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이 있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가 1998년 본격적인 규제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후 모든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삼았지만, 수십 년째 세계 최강규제 국가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심지어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독재체제에 가까운 국가와 나란히 적색국가로 분류되기도 했다.

원인으로는 공공부문의 특징을 꼽았다. 규제란 본질적으로 공무원이 본인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실제로 법률이 만들어지면 법을 운용하는 팀이 꾸려지거나 관련 공공기관이 생겨나는 사례가 많았다. 규제개혁이 어려운 것도 결과적으로 공무원들이 가진 권한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는 일인 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책은 시민들이 규제를 없애기 위한 팁도 전수한다. 공무원들의 공고한 논리를 어떻게 하면 깰 수 있는지, 공무원들의 허점은 무엇인지, 규제 청원의 효과성을 어떻게 해야 높일 수 있는지 등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시민들이 사용하지 않던 ‘청구권’을 활발히 사용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규제혁신 촉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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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규제가 없는 국가는 없다. 하지만 잘못 만들어진 규제는 가다듬어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규제는 타파해야 한다. 정부만 믿을 게 아니라 시민이 직접 나서자는 촉구가 담긴 이유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렇게 외친다. “규제당하지만 말고, 일어나 바꾸자!”


[신간]규제에 멍드는 한국…"당하지만 말고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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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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