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 연극 '카르멘' 드라마터그 최여정 작가
카르멘은 팜파탈 아닌 ‘스토킹 피해자’
돈 호세는 소유욕에 눈 먼 ‘스토커’
드라마터그, 창작자-관객 아우르는 매개자

1875년 초연 이후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주인공 '카르멘'은 팜 파탈(파멸적인 여성)의 대명사로 묘사돼왔다. 성실한 군인 돈 호세는 자신의 약혼마저 저버리고 카르멘에게 집착하다 끝내 그녀를 죽이게 되고, 카르멘의 자유분방한 연애는 돈 호세의 살인에 면죄부를 부여했다.


연극 '카르멘' [사진제공 = 서울시극단]

연극 '카르멘' [사진제공 = 서울시극단]

AD
원본보기 아이콘

하지만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는 법, 그리고 집착은 사랑이 될 수 없기에. 어쩌면 카르멘은 오랜 시간 동안 대중의 오해 속에 비난받아왔는지 모른다. '카르멘'을 새롭게 해석한 서울시극단의 연극 '카르멘'에 드라마터그로 참여한 최여정 작가는 "안전 이별과 스토커 살인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지금 우리가 카르멘을 어떻게 봐야 하나, 시의적절한 고민"이었다고 말한다.

고선웅 단장의 카르멘은 사랑의 의미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의 카르멘은 주체적이고, 당당하다. 최 작가는 "연극 '카르멘'에서 카르멘은 돈 호세에게 스토킹 당하는 피해자지만, 피해자 같지 않고 그 상황에 당당하게 맞서는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그녀의 변심에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에도 카르멘은 "어차피 내가 갈 길, 뒷걸음질은 싫어. 죽음이라도 상관없어! 카르멘의 길을 갈 뿐."이라고 응수한다.


당당한 카르멘의 모습이 두드러질수록 돈 호세의 광기 어린 집착도 부각된다. 최 작가는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1845년 원작 소설 이후 돈 호세를 향한 묘사는 동정적 시선이 주를 이뤄왔다"며 "그런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이번 연극에서는 죽음 앞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는 카르멘과 그러지 말았어야 했던 돈 호세에 대한 이야기로 재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는 전 과정에서 문학적, 예술적 조언을 하는 연극 전문가인 드라마터그는 공연의 첫 관객이기에 최 작가는 누구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카르멘을 지켜봤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는 대본에 없는 카르멘의 전남편 가르시아, 그리고 카르멘의 새로운 사랑 투우사 루카스의 비중이 커졌는데 이는 돈 호세와 대조를 이뤄 카르멘을 둘러싼 다양한 남성상을 보여준다"고 했다.


최여정 작가. [사진 = 본인제공]

최여정 작가. [사진 = 본인제공]

원본보기 아이콘

극 중에서는 돈 호세의 약혼녀 미카엘라가 원작과 달리 자살을 선택하는데 이에 대해 최 작가는 "사실 이 부분을 왜 굳이 넣었을까 고민을 같이했었는데, 결국엔 미카엘라식의 사랑도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이해했다. 돈 호세처럼 갖지 못한다고 카르멘을 죽이는 것도, 미카엘라처럼 사랑을 잃었다고 해서 내 목숨을 거는 것도 모두 잘못된 사랑의 방식이란 걸 시사한다"고 부연했다.


공연 기획자로, 또 홍보 마케터로 연극을 쉽게 알리고 싶어 공연 칼럼을 쓰며 활동해온 최 작가는 드라마터그로 직접 작품에 참여하면서 연극을 더 좋아하게 됐다고 말한다. '연극이 위기'라는 질문에 그는 "OTT 콘텐츠가 매일같이 쏟아지고, 취향은 다들 비슷해지는데 결국엔 각자 다른 취향,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 들게 될 것 같고 연극은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무대예술만의 특징을 가진 장르라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고 답했다.

AD

최 작가는 모든 공연의 첫 번째 관객이 '드라마터그'라고 소개한 뒤 "창작자와 관객의 매개자로 본인의 예술작품에 몰입하고 있는 창작자에게 작품이나 공연시장에 대한 시선과 이해를 조언하는 내부 비평가이기 때문에 연출가와 배우, 스태프와 관객을 아우르는 소통 메신저로 다양한 의견을 잘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