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 곡성 '교우촌'…그곳에선 양반·중인·노비가 평등했다
1827년 천주교 '정해박해', 3권 대하소설로 풀어내
“배교와 죽음의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다룬 내용은 많지만, (박해를 피해 이주한 천주교도가) ‘교우촌’을 이루고 사는 내용은 없더라. 그런 내용을 제대로 다뤄보고 싶었다.”
27년간 역사·사회 소설에 천착해온 김탁환 작가가 4년 만에 역사소설로 돌아왔다. 그간 조선 500년을 소설로 조명해온 김 작가는 이번엔 19세기 초 천주교도가 희생된 ‘정해박해’를 글감으로 삼았다. 제목은 '사랑과 혁명(해냄)'.
소설의 기원은 조선 후기인 1801년(순조 1년) 일어난 ‘신유박해’다.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로 신자 100여명이 처형되고 400여명이 유배된 것으로 알려진 사건. 당시 실학자 정약용·정약전 형제 등 지식인들이 대거 처형·유배됐고, 실제로 많은 천주교도가 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이주했다. 일부는 한양에서 전남 곡성 산골로 몸을 숨겼고, 신앙공동체인 ‘교우촌’을 이뤘다. 소설은 이들의 삶을 조명하며 1827년 곡성에서 시작해 한양까지 번진 ‘정해박해’의 맥락을 짚어낸다.
소설은 2018년 우연히 시작된 곡성 거주가 계기가 됐다. 천주교도를 가뒀던 감옥 터에 세워진 옥터 성지를 품은 곡성성당을 보고 영감을 받은 것. 19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출간기자간담회에서 김탁환 작가는 “곡성성당 십자가 위에 있는 ‘베드로의 닭’을 보는데 몸에 전기가 왔다”며 “평신도끼리 숨어서 마음을 이루고 믿음을 지켰던 내막이 궁금했다”고 집필 동기를 전했다.
교우촌 생활은 소설과 같았다. 김 작가에 따르면 1801년 이주한 그들은 자기들만의 질서를 만들어 생활했다. 일주일 단위로 예배를 보고, 천주교 성인을 기리기 위해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양력을 사용했다. 1801년 이주 당시만 해도 양반, 상인, 중인이 섞여 있었지만, 1827년 ‘정해박해’로 정체가 탄로 날 때는 모두가 옹기를 굽는 천민 신분을 이뤘다. 김 작가는 “당시 신분 노출을 우려가 큰 농사 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천민들이 주로 하는 옹기 굽기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은 총 3권이다. 1권은 곡성 교우촌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옹기를 만들며 생계를 꾸린 시간을, 2권은 천주교인과 첩자, 군관이 숨고 달아나고 쫓고 쫓는 추적의 시간을, 3권은 옥 안팎에서 다시 신부를 모셔오기 위한 움직임과 기다림의 시간을 담고 있다. 소설은 재미를 더하기 위해 추리소설 면모를 가득 가미했다. 김 작가는 “(당시 조정은) 순교자가 많을 경우 추모 분위기가 조성될까 봐 12년 동안이나 죽이지 않고 배교를 권했다. 이는 천주교 박해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신태보라는 사람이 쓴 옥중수기는 밖으로 전해져 프랑스 파리까지 전해졌다. 그 과정을 최대한 잘 읽히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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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교우촌 이야기는) 순교가 아니기에 천주교 내에서도 크게 높이지 않지만, 이름과 의미를 부여해 이야기로 되살리고 싶었다”며 “새로운 희망을 가지는 존재로 존중하는 (집필)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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