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투자금 회수) 후 회사가 더 잘 돼야 한다."
최근 만난 한 사모펀드운용사 대표의 말은 자본과 산업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의 화두인 HMM 인수전이 떠올랐다. HMM이라는 기업이 국가 경제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에 비춰볼 때 매도자인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M&A 전체 과정에서 곱씹어야 할 경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 7조4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HMM 인수전이 한창이다. LX·하림·동원그룹의 3파전으로 좁혀졌고, 매각금액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할 경우 약 5조원대로 언급된다. 부실 기업으로 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했던 HMM은 해운업 호황기를 거치면서 초우량 기업으로 거듭났다. 시가총액은 8조원대로 정부와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투입한 금액을 넘어 수익 극대화 논리를 펼 수 있을 정도로 건실해졌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인수전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 걱정이다. 승자의 저주란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것의 실상이 이득보다 손해인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특히 M&A 과정에서 승자의 저주가 곧잘 발생한다. 대상 기업의 객관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어렵다.
대체재가 있는 기업이라면 ‘승자의 저주’ 발생 여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HMM은 그렇지 않다. 국내 최대 해운사이자 유일한 국적 글로벌 원양 선사다. 특히 국민 혈세를 투입해 겨우 살려낸 이 기업이 또 흔들린다면 우리 경제와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오는 건 인수 후보들의 체급이 HMM과 비교해 작기 때문이다. LX·하림·동원 등 ‘쇼트리스트’에 포함된 3사 모두 HMM을 인수하기엔 자산 규모나 자금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자산 규모 면에서 보면 하림그룹 17조원, LX그룹 11조원, 동원그룹 9조원으로 HMM(26조원)의 덩치보다 현저히 작다. 금융회사나 사모펀드, 기관출자자 등을 찾아 우군을 확보했지만 경영권 안정성 측면에서 보면 수조 원 규모의 외부 차입은 지속적 불안 요인이다. 여기에 글로벌 해운업황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도 HMM 인수자에는 부담이다.
물론 인수 이후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인수 후보마다 승자의 저주를 피할 청사진을 그려놨다. 그렇더라도 매도자 측에선 자금조달 계획과 성장 전략이 뚜렷한 기업에 매각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수 가격뿐 아니라 인수 이후 성장 전략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예컨대 LX·하림·동원 등 원매자들과 HMM의 물류 시너지 효과 극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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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자본시장이 발전하고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의 파이가 커질수록 각 플레이어의 역할도 그만큼 커진다. 구제금융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산업은행의 역할이 단지 HMM을 파산 위기에서 구해낸 것에 그쳐선 곤란하다. 엑시트 이후 그 회사가 더 잘될 수 있도록 로드맵을 함께 그리는 투자 철학이 필요하다. HMM 인수전의 최종 승자는 단순 인수 가격이 아닌 미래 가치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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