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섭의 금융라이트]이자놀이 금지된 이슬람 국가들의 '수쿠크'
율법 때문에 이자 못 받는 이슬람
채권 발행 위해 찾아낸 우회로 '수쿠크'
중간단계에 실물거래 끼워 넣는 방식
오일머니 유입, 투자처 다변화 장점에도
한국은 보수기독교계 강력반발에 무산
지난주 한 국내 건설사가 ‘수쿠크(Sukuk)’를 발행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수쿠크란 말은 이슬람 국가들이 발행하는 채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수쿠크는 역사와 구조가 아주 독특하다는 것 아시나요? 한국에서는 수쿠크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협박을 받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수쿠크에는 어떤 특징이 있고 왜 기업들은 수쿠크를 발행하려 할까요?
수쿠크란 원래 이슬람 문화권에서 권리나 의무, 또는 금전계약을 표시한 문서를 뜻하는 용어였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이슬람식 수표 혹은 어음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거래 상대방에게 계약한 돈을 언제까지 주겠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죠.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7세기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에서 최초의 수쿠크 거래가 확인됐다고 합니다. 무슬림 상인들은 9세기 무렵부터 이러한 수쿠크를 활발하게 사용해왔고요.
수쿠크가 공식적으로 금융기관의 채권을 일컫는 말로 자리 잡은 건 1988년 무렵입니다. 이슬람협력기구(OIC)에서는 금융사의 유동성 확보수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수쿠크 사용을 합법화하죠. 1990년 말레이시아의 기업 ‘쉘’에 의해 처음으로 현대화된 수쿠크가 발행됐고, 2000년에는 수단 정부가 국가 차원의 수쿠크를 발행했습니다. 2001년에는 바레인 중앙은행이 1억달러 수쿠크를 발행했고요.
이자놀이 금지한 이슬람 율법 샤리아…그럼 채권은?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채권을 왜 국제기구에서 합법화까지 해야만 했을까요? 그것도 1990년대가 다 되어서야 말이죠. 선진국은 물론 저개발국가에서도 사용하고 있던 채권 시스템을 그때야 받아들였다는 게 선뜻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이슬람 율법 ‘샤리아(Shariah)’를 알아야 합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채권이 발행된다고 해서 모두 수쿠크가 되는 건 아닙니다. 샤리아의 정신에 부합하는 금융상품이어야 하죠. 율법학자들로 구성된 샤리아위원회가 율법을 어기는 요소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합니다. 발행 이후에도 위원회의 감시와 감독을 받고요, 나중에라도 채권이나 채권거래에 율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포착되면 자금을 회수해버립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샤리아에서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입니다. 샤리아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정당한 노동이나 투자를 통해서만 대가를 얻어야 하죠. 그래서 원칙상 채권발행이 어려웠던 겁니다. 채권의 성격 자체가 돈을 받고 사후에 이자와 함께 원금을 돌려주는 것이니까요.
이슬람이 찾아낸 우회로 '수쿠크'…집세는 받아도 되니까
그럼 수쿠크는 어떻게 채권의 역할을 할까요? 실물거래를 활용합니다. 무슬림에게 돈을 빌리려는 A기업을 상상해봅시다. A기업은 무슬림에게 곧장 돈을 빌릴 순 없습니다. 이자를 줘야 하는데 무슬림은 받지 못하니까요. 대신 무슬림에게 건물을 팝니다. 건물을 계속 쓰되 무슬림에게 월세를 내죠. 샤리아는 집세를 금지하고 있진 않거든요. A기업은 집을 팔고 받은 돈(투자금)을 활용하면서 월세(이자)를 냅니다. 약속한 시점에 건물을 다시 매수(상환)하죠.
수쿠크 발행은 중동국가의 성장과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중동에는 오일달러가 풍부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수쿠크 발행을 통해 자금 여력이 넉넉한 중동 국가들로부터 돈을 끌어올 수 있죠.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 치우친 자금조달원을 다변화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A기업사례처럼 수쿠크 투자자는 기초자산을 소유하게 되니, 위기에도 급격히 이탈하지 않는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물론 수쿠크가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실물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전통적인 채권 시스템보다 구조가 복잡합니다. 게다가 세금 부담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A기업은 비록 자금을 투자받기 위해 한 행동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부동산을 매각했습니다. 당연히 매각에 따른 세금을 내야 하죠. 어떤 자산을 어떻게 거래하느냐에 따라 양도소득세, 부가가치세, 취·등록세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쿠크 통과하면 대통령 하야운동, 국회의원 낙선"
다토 유슬리 유소프 말레이시아 당시 거래소 대표이사가 2009년 11월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이슬람 금융 국제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한국도 수쿠크에 큰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습니다. 2009년 1월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슬람 금융 세미나’ 축사에서 “이슬람 금융은 국제시장의 새로운 자금 공급처이자 투자처로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두 달 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행정안전부, 금융감독원 등은 태스크포스를 꾸렸죠. 그리고 같은 해 9월 이슬람 자금 도입지원을 위해 수쿠크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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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수쿠크에 대한 강한 반발도 있었습니다. 조용기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정부가 이슬람채권법을 계속 추진하면 이명박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죠.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은 협박 문자를 받아야 했고, 기독교단체 대표들은 수쿠크법을 찬성하는 의원들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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