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만7000명.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AI)가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CSA)으로 인해 창출될 것으로 예상한 일자리 수다. CSA가 도입된 지난해 이후 현재까지 미국 전역에서 50개 이상 반도체 프로젝트가 발표됐는데, 이로 인해 창출되는 일자리만 4만4000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는 곧 국가안보"라며 중국을 배제한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심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 많은 일자리는 어떻게 채울 것인가. 이와 관련해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경영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컴퍼니는 2030년까지 반도체 엔지니어 30만명과 숙련된 기술자 9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일자리를 채울 미국의 젊은 공학자들은 줄어드는 추세다. 미국의 정보통신 분야 싱크탱크인 정보통신혁신재단(ITIF)에 따르면 2020년 미국에서 전기공학 분야 학사, 석사, 박사 학위는 2만9860개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전체 전공 학위의 0.9% 정도다. 2009~2021년 사이 전기공학 학위를 가진 18~30세 인구는 22.1% 정도 증가한 반면, 다른 전공자들은 35.8% 늘었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으로 들어올 외국인들이 이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 ITIF는 1997~2020년 미국 시민권자의 전기공학 학사나 석사 학위는 18.2% 증가한 반면 비시민권자의 학위는 110% 증가했다고 밝혔다. 2009년부터 10년간 미국 시민권자 전공자는 20.5%, 비시민권자는 40.7%가 늘기도 했다. 특히 미 유학생의 77%(미국국립과학재단, NSF)는 미국에 머물기를 원하지만 54% 정도가 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상황이다. 미국에 머무를 수 있는 문만 열어준다면, 반도체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멜팅 팟’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반도체 일자리를 외국인으로 채우는 것을 문제로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39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공급망 재편에 나선 것이 "반도체는 곧 국가안보"라는 명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곱씹어 본다면 딱 들어맞는다고 보기 어렵다. 국가안보 최전선에 선 외국인들의 모습은 미국인 입장에서 봐도 모순된 장면일 수 있다.
이들을 통해서라도 자체 공급망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은 부러운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인재가 미국으로 기술 이민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 미 의회는 지난 4월 ‘한국과의 파트너 법(Partner with Korea Act)’을 상·하원에 발의했다. 반도체 인재 등 연간 1만5000명에게 한국인에게 전문직 취업비자를 내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비이민을 전제로 한 법안이지만 벌써부터 인재와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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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초격차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도체 인재 정책의 초격차가 필요하다. 국회에 올라 온 첨단산업 인재혁신법이나 정부의 국가첨단전략산업 육성·보호 기본계획(2023~2027년) 등의 노력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인재를 대상으로 한 타국의 인재 사냥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수조원대 적자를 내고도 ‘위기 극복 격려금’ 등 성과급을 지급하는 고육책을 짜낼 정도다. 인재 유출을 막고 국내 반도체 산업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시행하는데 속도를 내야 한다. 반도체는 국가안보라는데, ‘반도체 사관학교’로 전락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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