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3막 기업]'평균 나이 83세'가 기업 굿즈 디자인
“사회에서는 참을 줄 아는 것도 앞길에 행복”
“꾸준히 하다 보면 편한 날이 오겠지”
지난 3일 찾은 서울시 강동구 ‘아립앤위립’ 사무실. 그곳에서 만난 심현보 대표(32)는 책장에서 스티커 하나를 꺼내 기자에게 건넸다. 스티커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문구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평균 나이 83세 디자이너들이 건네는 삶의 지혜다.
아립앤위립은 생계유지를 하기 힘든 노인들에게 프로젝트 단위의 일거리를 연계하는 사회적기업이다.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손에 쥘 수 있는 돈도 적은 폐지 수거 업무는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 심 대표가 대안 일자리를 만들자는 결심으로 지난 2017년 창업했다.
창업 후 카카오, 스킨푸드, 우아한형제들, 투썸플레이스 등 다양한 기업과 B2B(기업 대 기업) 협업을 해온 아립앤위립. 주로 기업 굿즈에 어르신들의 디자인을 입히는 방식으로 협업하며 디자인 분야에서 입지를 굳혔다.
아립앤위립의 브랜드명은 ‘신이어마켙’으로, 다양한 물품을 모아서 파는 '마켙'에 '시니어'라는 단어를 더했다. 다만 시니어라는 표현이 낯선 어르신의 발음을 그대로 담아 '신이어'로 썼고, ‘신’에는 '새 신(新)', '나아갈 신(?)', '매울 신(辛)' 같은 의미를 더했다고.
심현보 아립앤위립 대표가 함께 일하는 시니어들의 이야기로 만든 책 '일단 살아봐, 인생은 내 것이니까'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 아립앤위립은 어떤 일을 하나.
▲어르신들이 그린 그림과 이야기를 물상에 입히는 회사다.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노인들에게 프로젝트 단위의 일거리를 제공한다. 어르신들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디자인을 입힌 굿즈를 만든다.
-창업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왜 창업했는지 궁금하다.
▲기업에서 교육기획 파트에서 근무하다가, 대행사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했다. 창업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현금 흐름을 만들기 위해 프리랜서로 일했다. 직장인으로서 일을 열심히 했지만, 회사의 부속품처럼 느껴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20대 중반에 회사를 나와 창업한 거다. 대학에서 경영을 전공해서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공익적 가치도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는데, 그걸 지금의 사업 모델을 통해 실현했다.
-어르신들에게 디자인 일거리를 주는 아이디어를 고안한 이유는.
▲사업모델을 모색하기 위해 폐지 수거 노인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자존감이 낮다는 공통점이 있더라. 이분들의 자아를 끌어내고 드러낼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은 창작의 영역이라 ‘나’를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모델이 탄생했다. 회사 이름도 ‘나를 세우고, 우리를 세운다’라는 의미로 ‘아립앤위립’이라고 지었다.
-어르신들이 디자인 작업을 생소하게 여기지 않았나.
▲60~70년 만에 그림을 그려본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브랜드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게 어려웠다. 시니어들은 기성품만 사서 쓰던 세대다. 공장에서 만드는 게 상품이지, 본인이 그린 그림이 새겨진 물건이 상품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하더라. 일종의 ‘커스텀(custom)’ 개념을 이해하도록 하는 일이 어려웠다. 신이어마켙 제품이 팔리는 모습을 몇 번 직접 보시고 나서는 감을 잡으셨다. 이제는 “신제품 안 나오냐”고 물으실 정도다.(웃음)
- 어르신 고용을 얼마나 많이 했나. 얼마나 늘릴 계획인지도 궁금하다.
▲지금까지 디자인에 참여한 노인들은 25명 정도다. 이 중 7분의 어르신은 매주 수요일 오전에 와서 디자인 작업을 한다. 다만 나는 ‘고용명수’보다 ‘고용횟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분기마다 5명의 어르신이 필요하다면, 같은 5명을 4번 만나는 게 중요하지 매 분기 다른 5명을 고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 1년에 총 2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는 통계를 낼 수 있겠지만, 일회성 일자리보다는 같은 사람이 반복적으로 일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 그래서 25명의 노인들은 우리와 최소 3년 이상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정규직으로도 어르신을 고용하고 있다고.
▲78세 어르신 한 분을 크리에이터로 고용했다. 시니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에 정작 시니어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원래 3년 동안 파트타이머로 일했던 분이고, 합이 잘 맞아 2년 전 정규고용했다. 고용 당시 부양의무제가 폐지돼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었던 분이다. 그래서 2주 동안 결정할 시간을 드렸다. 파트타이머로 근무하다 매일 출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70대에 말이다. 일하지 않아도 수급자 자격으로 돈을 받을 수 있는데 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과연 많을까. 그런데 그분은 "나는 그동안 복지혜택을 많이 받았다. 내가 받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지 않겠냐"며 스스로 일을 택했다. 대단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고령사회에 대한 본인만의 문제의식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고령화 문제에 대해 좀 더 실질적으로 고민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65세 이상을 한 덩어리로 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60대, 70대, 80대 다 차이가 있다. 세대, 성격, 경험과 학력 모두 다르지 않나. 어르신들이 일하러 오실 때 우리가 사원증처럼 생긴 ID 카드를 드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일개 노인이 아닌 개인으로서 일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또, 시니어마다 다른 고용의 형태를 원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규직만 바람직한 고용 형태로 보는 분위기가 있는데,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비정규 근무 형태를 선호하는 시니어도 정말 많다.
- 목표 매출과 투자 유치 계획이 궁금하다.
▲5년 뒤 매출 10억원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만약 투자를 받는다면 노인 일자리나 인구 고령화 솔루션에 대해서 관심 있는 투자사로부터 투자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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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계획이 있다면.
▲상반기에 7건의 B2B 사업을 마무리했다. 하반기에는 신제품으로 컵, 접시 등을 준비 중이다. 양말목으로 만든 파우치 등 제품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또, 지금은 7080세대를 위한 일거리를 만들고 있다면 중장기적으로는 6070 세대를 위한 일자리도 발굴하고 싶다. 음식을 잘 만드는 등 생산 능력이 있는 시니어들이 직접 상품을 만들고 아립앤위립이 유통하는 구조를 모색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안에 구체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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