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핵심 엔지니어
노하우 유출되면 추월 당할 우려 커
1980년대 日도 후발주자에 빼앗겨

전략 산업인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술이 잇따라 유출되면서 업계 내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유출된 기술의 종착역이 '반도체 굴기'에 사활을 거는 중국이라는 점도 불안감을 부추기는 원인입니다. 한때 전자산업 최강국이었던 일본이 한국, 대만 등에 기술력을 추월당한 전철을 우리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 14일 복수 매체 보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 상무 출신 반도체 엔지니어 A씨 등 6명이 해외로 핵심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현재 중국의 한 반도체 기업 대표를 맡은 A씨는 삼성의 반도체 공장(팹) 관련 핵심 도면을 유출하려 했습니다. 이 기술은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됐으며, 그 가치는 최소 3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 최전선에서 근무했던 전 엔지니어들이 해외로 기술을 유출하다 적발된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2021년에도 디램(DRAM) 관련 핵심 기술을 국외로 유출한 엔지니어 17명이 검찰에 기소된 바 있습니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이런 사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전직 국내 엔지니어, 연구원들이 해외 기업으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는 겁니다. 이는 반도체 산업의 지식집약 산업적 특성과도 연관돼 있습니다.


여러 첨단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반도체도 현장 엔지니어들의 숙련도가 수율과 생산 효율성을 결정합니다. 제조 설비를 어떻게 공장에 배치할지, 어떤 방식으로 구동할지 등이 모두 양품 비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이런 노하우를 몸으로 체득한 엔지니어들은 경쟁사들, 특히 해외 후발 기업들에는 더없이 탐나는 전략 자산일 겁니다.


과거 한국이 아직 반도체 산업을 막 육성하던 당시, 우리 기업들도 일본의 고숙련 엔지니어들을 영입하며 기술력을 확보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5일(현지시간) 한 일본 경제 매체는 1980년대 삼성으로 이직한 한 일본인 엔지니어의 인터뷰를 싣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반도체 관련 컨설턴트로 근무한다는 B씨는 이 인터뷰에서 "일개 연구원에 불과했던 저를 삼성은 임원까지 대동하며 극진히 대접했다"라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일반 연구원으로 정년까지 일하다 퇴직하는 것보다 세계를 상대로 싸우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은 이미 반도체, 전자 산업 초강국이었으나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고, 후발주자 기업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애써 망각했다는 지적입니다.


일본 구마모토현에 건설 중인 TSMC의 반도체 공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일본 구마모토현에 건설 중인 TSMC의 반도체 공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과거 세계 최고로 손꼽혔던 일본 반도체 산업 재능 풀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국가 차원의 반도체 산업재건 전략을 추진 중인 일본 내부에서도 최대의 걸림돌은 '유능한 엔지니어 부족'으로 손꼽힙니다.


이처럼 '반도체 두뇌 유출'을 호되게 경험한 일본은 현재 매우 엄격한 기술 유출 단속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내각은 첨단기술을 유출한 기술자를 2년 이하 실형에 처하는 내용이 골자인 '경제 안전보장 추진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문제는 과거 핵심 인재와 기술을 유출 당한 일본의 모습이 한국에서도 재현될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한국은 디램, 낸드 등 옛 일본 반도체 산업의 강점이었던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구축했고, 지금의 중국 업체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분야입니다. 중국 기업이 국내 인재를 노골적으로 탐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정부도 전략 기술 유출 방지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특허청과 행정안전부는 지난 4월 11일 반도체 관련 기술만 전담 심사하는 '반도체심사추진단'을 신설했습니다. 반도체만 집중해 심사하는 전담 조직을 만들어 특허권 침해와 기술 유출을 촘촘히 감시하기 위함입니다.

AD

정치권에선 기술 유출 범죄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윤희석 국민의힘 대변인은 지난 13일 논평에서 "기술, 인재 유출을 방지하고 솜방망이 처벌만 하다간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켜낼 수 없다"라며 "국민의힘과 정부는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 강화 등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