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藥국가]⑧'살 빠지는 약' 합법 틈 파고든 의료용 마약
■ 2장. 마약범죄, 10대를 노린다
최근 5년간 의료용 마약류 95억정 처방
다이어트 약, 공부 잘하는 약 등 오남용
합법의 틀 안에서 '10대 약물중독' 유혹
대한민국은 5명 중 2명이 의료용 마약을 처방받는 나라다. 허술한 의료체계가 발행한 처방전은 10대를 약물중독으로 이끄는 통행증이 되고 있다. '살 빠지는 약' '공부 잘하는 약' 등의 무분별한 처방은 청소년에게 중독이라는 공포 대신 효능이라는 유혹으로 다가간다. 합법의 틀 안에서 이뤄진 약물 오남용으로 최근 5년간 처방된 의료용 마약은 95억정(개)에 육박했다.
19일 수사 당국과 의료계 의견을 종합하면 '의료용 마약류'가 10대 시절 마약류를 접하는 첫 통로인 경우가 늘고 있다. 펜터민 성분의 식욕억제제는 나비 모양 알약의 이름을 따 '다이어트 나비약'으로 불린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 목적의 메틸페니데이트 계열 약물은 학원가에서 '집중력을 향상해주는 약'으로 통한다. 미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펜타닐 계열의 진통제는 10대 청소년이 본격적인 환각 목적의 중독으로 빠지는 시작점이 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을 지낸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는 "흔히 나비약이라 부르는 다이어트 약물에 담긴 펜터민 성분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며 "그 성분의 화학적 구조가 필로폰과 같은 부류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물론 약물의 작용 자체는 마약에 비해 약하지만, 식욕억제제와 ADHD 치료제 모두 향정신성의약품"이라며 "수사 당국에서 지적하듯이 이런 약물에 노출된 학생들이 마약류 중독으로 더 쉽게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나비약 등 10대의 접근성이 높은 약물을 지목했다. 이 교수는 "의료용 마약류가 불법 마약류 중독으로 가는 게이트웨이라고 명확히 규정할 수 있는지 따진다면 아직은 규정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서도 "다이어트약 등은 10대 후반 아이들이 살을 뺄 목적으로 먹었다가 약물 오남용으로 빠지는 케이스가 실제로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경제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확보한 의료용 마약류 처방 현황에 따르면 2021~2025년 의료용 마약류 처방 환자는 9841만명으로 1억명에 육박했다. 2024년 처음 2000만명을 돌파한 뒤 지난해 2019만명이 처방받았다.
5년간 의료용 마약류 처방 건수는 5억1359만건에 달했다. 연평균 1억건 넘는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식욕억제제의 경우 2021년 586만건에서 지난해 459만건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최근 10대 중심의 처방이 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눈에 띄는 건 ADHD 치료제다. 메틸페니데이트 계열 약물 처방은 2021년 172만건이었지만, 해마다 늘어 지난해 322만건에 달했다. 10대 사이에서 대리처방·명의도용·재판매까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약물 오남용이 불법 마약류 중독으로 연결되는 배경에는 내성 문제가 있다. 정 교수는 "의료용 마약류가 불법 마약류로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까 우려된다"며 "약물은 내성이 생기는데, 점점 약을 늘리거나 약효가 강한 약물을 찾게 되는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처방량을 보면 의료용 마약류 사용이 얼마나 가파르게 증가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 기간 처방된 의료용 마약류는 94억7946만정(개)에 이르렀다. 알약 1개의 길이를 1.5㎝로 가정하고 일렬로 늘어뜨리면 지구를 3바퀴 반을 돌고도 남는 양이다. 지난해 디아제팜 등 항불안제는 9억2381만정 처방됐다. 이 효능에 관한 환자 수가 592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1명당 156정을 처방받은 셈이다. 지난해 ADHD 치료제는 무려 1억815만정, 2021년 4538만정의 두 배 넘게 불어났다.
10대까지 유혹하는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막기 위해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무는 통합적 대응이 요구된다. 이 교수는 "약을 처방하는 진료 행위에 대한 모범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은 보건복지부의 질병 관리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사안인데, 이해관계자가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식약처를 중심으로 '약물 처방이 이렇게 늘어났는데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하는 논의만 진행되고 있다"며 "불법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철저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마약류 중독은 치료·재활 등이 매우 중요한데, 당장 치료와 재활부터 복지부와 식약처로 대응이 따로 놀고 있다"며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콘트롤타워가 정말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급 억제를 어떻게 할지, 다음은 수요 억제, 나아가 치료·재활에 대한 대응, 전반적으로 예방에 대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할지 묶어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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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장희준 오지은 박호수 이지예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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