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현대시는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이다. 박인환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일주일 전, 술자리에서 즉석으로 지은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의 실제 연애를 바탕으로 한 감상적 시로 보기도 하나, 6.25전쟁으로 인한 상처로 괴로워 하던 시인의 일생을 놓고 볼 때 전쟁으로 인한 우리 민족의 비극과 상실감을 나타낸 시로 평가받고 있다. 글자 수 224자.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 <세월이 가면>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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