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조치' 예고에 블랙리스트 떠올리는 공무원
'불통 이미지' 확산하면 공직사회도 등 돌릴 것
정부부처의 한 인사는 취임 1주년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이 "억지로 설득해서 데리고 갈 필요 없다"며 '과감한 인사조치'를 지시한 발언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고 했다. 국정 기조와 맞지 않는 관료에 대한 공직기강 잡기를 넘어, 문재인 정부 당시 전 정부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들에게 사직을 강요했다는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도 떠올렸다. 2017~2019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이 박근혜 정권 당시 임명된 산하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한 사건으로 당시 재판부는 "'지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잘못된 인식을 보여줘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탈원전에서 원전 중심으로 나라가 바뀌고 연금과 노동, 교육 등 과거를 부정하는 개혁들이 줄줄이 추진되는 점을 감안하면 상황이 겹쳐 보이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 경우가 다르지 않냐고 묻기에는 전 정부를 '잘못된'으로 밀어붙이는 프레임은 비슷하기까지 하다.
전 정부에 대한 윤 대통령의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전 정부를 언급하며 지적에 나선 사례는 많지만, 취임 1주년을 전후로 사흘째 이어지는 저격으로 인해 '조용한 1주년'은 공염불이 됐다.
윤 대통령은 논란이 된 전세사기와 투자사기 모두 전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을 원인으로 지목했고, "방역은 너무 잘해서 질문이 없으신가요?"라며 자화자찬에 나섰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K방역'에 대해서는 "정치방역 피해자는 국민"이라고 일갈했다. 문 전 대통령까지 직접 언급하며 "국군 통수권자가 전 세계에 '북한이 비핵화를 할 거니 제재를 풀어달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체계가 어떻게 됐겠느냐, 결국 군에 골병이 들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윤 대통령이 지적한 전 정부의 '묻지마식'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생태계가 무너지고 전력 수급 안전성이 파괴된 것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는 한국전력공사는 20조원이 넘는 손실도 봤다. 신규 원전을 백지화하고 완공된 원전도 가동을 미루는 대신, 대체 발전 방식으로 더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를 택한 탓이다. 전세사기와 마약범죄에서도 전 정부는 자유로울 수 없다. 증권합수단 해체, 검찰 옥죄기와 같은 판단은 지금의 사태를 일으킨 단초가 됐다.
하지만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최근 며칠간 보여준 행보에는 무한한 책임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총선을 불과 1년도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전 정부와 거야(巨野)의 책임을 부각하려는 의도라면, 이제 약발은 떨어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과거 정부의 잘못을 들춰내는 게 아니라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국민들은 대선을 통해 전 정부의 과오를 바로 잡아달라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 취임 1주년을 전후로 윤 대통령이 내놓은 국정운영 방향은 "2년 차 국정은 경제와 민생 위기를 살피는 데 주안점을 두겠다"는 오찬 자리에서의 발언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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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는 지지율을 1년 내내 좁은 박스권에 묶어 놓은 주원인 중 하나다. 소통을 중시하겠다던 대통령이, 국정과제를 물밑에서부터 다듬고 이끌 공무원에게 '과감한 인사조치'부터 예고한 것은 공직사회 전체에 불안을 야기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1년간 얼굴도 마주 보지 못한 채 훼방꾼으로 낙인된 거야(巨野), 반년 만에 콘크리트 벽에 갇힌 대통령실 기자들에 이어 '불통 이미지'가 공직사회로까지 확산하면 지지율은커녕 윤 정부 국정 기조의 뿌리부터 흔들릴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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