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순방 계기, 한-미 과학기술동맹으로 도약". 지난 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 내놓은 공식 과학기술 외교 성과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첨단 기술 전 분야에 대한 한미 양국 간 연대가 확대됐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기술 강국으로서의 자리를 견고히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U.S. Vice President Kamala Harris and South Korean President Yoon Suk Yeol visit NASA's Goddard Space Flight Center, in Greenbelt, Maryland, U.S. April 25, 2023. 사진출처 = 연합뉴스/로이터
과연 그럴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핵심 산업인 반도체 기술을 뺏길 우려가 높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상 ‘독소 조항’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 앞으로 미국에 공장을 세운 한국 반도체 회사들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생산 현장을 공개하고 영업 기밀을 제공해야 한다. 지난 30여년간 한국 업체들이 쌓아 온 반도체 제조 노하우ㆍ기술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도체 기술 개발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피땀을 흘려 온 업체ㆍ기술자들의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이다. 중국이 자국 투자 외국 업체들에게 기술 공유를 요구하고 있어 ‘도적놈(산차이ㆍ山寨) 경제’라고 욕을 먹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전기차 보조금 문제와 함께 이 사안도 해결하거나 적어도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기대가 무산됐다.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논의되지 않은 이유가 미 의회 소관인 입법 사항이라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적어도 미 의회 연설에서 ‘자유’를 노래 부를 시간의 10분의 1이라도 써서 이 문제의 해결을 호소했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분야에서도 ‘푸대접’과 말의 성찬에 놀아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미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한 윤 대통령과 동행해 우주 탐사ㆍ과학 협력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한국은 내각 각료인 이 장관이 성명서에 서명한 반면, 미국은 빌 넬슨 NASA 국장도 아닌 펨 멜로이 부국장이 나섰다. NASA가 우리나라 기준 차관급 기관으로 볼 수 있음을 감안하면 격이 낮아 ‘푸대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본은 어땠을까? 지난 1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방미 때 체결된 미·일 우주 탐사 협력 합의서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직접 서명했다. 주체의 격만 다른 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차이가 컸다. 미ㆍ일은 2020년대 후반 달 착륙 탐사에 일본인 우주인을 끼워 넣기로 하는 등 협력 수준이 다르다. 한미 간 우주 협력은 "앞으로 할 일을 찾아보자"는 초보적인 수준이다. 과학기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장관은 백악관 과학정책실장과 만나 ‘한-미 양자정보과학기술 협력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앞으로 잘 해보자"는 취지이지 실질적인 연구ㆍ인력 교류 등 ‘양자 최강국’ 미국에게서 우리가 기대했던 성과는 얻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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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 ‘외교는 국력의 총체적인 반영’이라는 현실을 깨닫게 해줬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국가적인 뒷받침이 되지 못하면 국제 외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우주개발ㆍ양자과학기술에서 뒤처지고 투자가 소홀했던 한국은 미국의 푸대접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 손에도 거래할 ‘물건’이 있어야 딜이 가능하다는 평범한 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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