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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다이어리]일상화되는 美 총기비극, 대피 연습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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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불이 꺼진 교실에서 몸을 웅크리고 앉은 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고 했어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인 20대 헤일리씨는 그가 기억하는 첫번째 ‘락다운 드릴’(Lockdown Drill, 봉쇄훈련)이 6살 때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가장 보호받아야 할 교내에서조차 총기난사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자, 이러한 봉쇄훈련이 필수처럼 자리 잡았다. 대피처를 찾아 문을 잠그고, 불을 끄고, 몸을 숨긴 채 비상사태가 해제될 때까지 숨죽여 기다리는 것이다.

총기난사에 대비한 락다운 드릴은 현재 미국 내 40개 이상의 주에서 의무화돼있다. 또한 미 공립학교의 약 98%는 2019~2020학년도에 최소 한번 이상 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파악된다. 자신을 ‘락다운 드릴 세대’라고 표현한 헤일리씨는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때때로 이 훈련을 반복해야 했다고 전했다.


락다운 드릴 이야기가 나온 것은 지난 주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로 어린이를 포함한 6명이 사망한 참극 직후다. 이 여파로 미국 곳곳에서 일부 학교가 보안 조치의 일환으로 락다운 드릴을 실시했다는 소식 등이 지역 언론, 인터넷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훈련에 참여한 두 자녀를 지켜본 테일러 니콜라스씨는 텍사스 지역언론에 "내슈빌 총격사건 직후 훈련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온라인에도 "8세인 내 아들은 3살부터 락다운 드릴을 받았지만 여전히 무엇인지 모른다", "미국으로 오기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교육이 일상화되고 있다" "자녀 놀이친구의 부모에게도 총기 소지 여부를 확인해보고 싶다" 등의 글들이 확인된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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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슈빌 초등학교 총기사고는 내게도 묘한 기시감을 가져다 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즉각 "끔찍한 악몽이다. 총기가 우리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며 총기 규제 입법을 촉구했다. 현지 언론에는 관련 보도 외에도 올 들어서만 59명의 어린이가 총기사고로 사망했다거나 최근 몇년간 총상으로 응급실에 실려 온 어린이가 급증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또다시 반복된 학교 총기 난사사건에 총기 규제 주장이 한층 힘을 얻었고, 총기 지지자들은 ‘지금은 총기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애도해야 할 시기’라고 맞섰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했다. 이는 모두 지난해 5월 텍사스주 유밸디 초등학교에서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총기난사 직후에도 똑같이 반복됐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후 보수성향의 주에서 보란 듯 총기 규제 완화에 나선 것조차도 이미 봤던 풍경 그대로였다.

안타깝게도 이제 총기사고는 미국인들에겐 삶의 일부가 된 듯하다. 미 비영리재단 총기폭력 아카이브에 따르면 올 들어 4명이상이 숨진 총기난사만 무려 130건에 달한다. 지난 3년간 매년 610~690건씩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하루 평균 2건꼴이다. 일반 총격은 훨씬 비일비재하다. 올 들어서만 9870명, 하루 114명가량이 총기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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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총기 규제는 극도로 분열된, 오래된 정치적 논쟁이다. 수정헌법 2조에 따라 미국인들에게 총기 소지란 자신과 가족을 무기로 지킬 권리로 해석된다. 여기에 전미총기협회(NRA)를 비롯한 이익집단의 이해관계까지 맞물려 더 복잡한 문제다. 다수의 미국인이 더 엄격한 총기 규제를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법안이 매번 의회를 넘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결국 이번에도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대피처를 찾아 불을 끄고 몸을 웅크린 채 숨죽이는 훈련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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