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에르노의 최신작
자신의 이야기를 글쓰기 소재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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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처럼 솔직한 글을 쓰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특히 여성의 욕망과 사회적 시선,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경제·사회·문화적 계급, 그에 대한 우리 모두의 터부, 이 모든 것들을 무서울 정도로 솔직하게 언급한다.


에르노가 자신의 상처를 하나하나 파헤쳐 내보이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독자는 미처 인식하지 못한 자신을 보게 된다. 에르노는 자신의 삶을 글쓰기 소재로 삼는다. 이 책에도 삶의 한 시절이 오롯이 담겨있다.

‘젊은 남자’는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에르노의 최신작이다. 50대 시절 만난 20대 젊은 남자와의 만남이 담겼다.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던 원고를 2022년 5월 보완해 출간했다.


30년 전 불법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책을 내자고 결심했으나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던 에르노는, 팬을 자처하며 편지를 보내오던 한 대학생을 만난다. 거주 지역은 다름 아닌 자신이 대학생 시절을 보낸 곳. 집은 에르노가 불법 임신중절 수술 뒤 출혈로 이송된 병원 바로 옆이다. 에르노는 그와 함께 과거 발자취를 확인하며 시간 여행을 한다. 20대의 자신과 50대의 나를 동시에 만난다.

레스토랑에서 20대 남자와 50대 여자가 속삭이는 모습, 길에서 손잡고 다니는 모습에는 사람들의 비난과 선망이 섞인 시선이 따른다. 에르노는 개의치 않는다. 오직 관심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사건들의 진정한 의미다. 젊은 시절 자신을 꼭 닮은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서둘러 덮어버린 지난날을 다시 꺼내본다. 반복의 쾌락과 슬픔에 젖던 에르노는 시간 여행과 내면 탐험을 끝내고 다시 글쓰기로 돌아간다. 그와의 관계를 끊어내고, 30년 전 불법 임신중절의 경험을 다룬 소설 ‘사건’을 집필하기에 이른다.


‘젊은 남자’는 에르노가 ‘여자아이 기억’ 뒤 6년 만에 발표한 신작으로, 출간 당시 프랑스 평단과 독자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출간된 한국어판에는 프랑스어 원문 전문이 수록됐다. 에르노의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이 별책 스물여섯 장으로 붙었는데,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상 연설에서 에르노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위해선 아름다운 문장,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바로 그런 문장과 단절해야만 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진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분노와 조롱, 심지어 상스러움마저 동반된 소란스러운 언어가 필요했고, 그것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에게 글쓰기는 여성, 계급 등 억압된 집단에 대한 해방이었던 듯하다. 오로지 대상이 되는 이들만 느끼는 계급과 종(種), 성(性)의 내면화된 지배 관계 같은 것들, 사회적으로 말할 수 없는 사실을 분명하게 할 때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의 해방 가능성이 나타난다고 한다.


에르노는 벗어나고 싶었던 자신의 과거를 끌어안는 것으로 수상소감을 마친다. 스물두 살 일기장에는 ‘나의 종(種)을 배신하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쓰겠다’고 적었다. 하지만 60년 뒤 노벨상 수상소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노동에 지쳐 일찍 생을 마감한 남자와 여자들, 문학 속에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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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자 / 아니 에르노 지음 / 윤석헌 옮김 / 레모/ 109쪽 / 1만5000원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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