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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다이어리]매장에 등장한 훈련견…'좀도둑 낙원'의 고육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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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좀도둑(shoplifting)을 막아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미국 내 소매업체들의 주요 고민 중 하나는 급격히 늘어난 매장 절도 문제다. 일찍부터 고담시티라는 별명으로 불려온 뉴욕시라고 상황이 다르지않다. 작년부터 뉴욕 맨해튼 시내 곳곳의 드럭스토어에선 자물쇠로 잠긴 판매대가 늘어나고 있다. 유명 드럭스토어인 월그린스에서는 되팔기에 용이한 유명 비타민 제품, 고가 제품뿐 아니라, 맥주나 아이스크림을 보관한 냉장·냉동고에마저 자물쇠 체인이 걸리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기 위해서도 굳이 직원을 호출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좀도둑이 좀처럼 끊이지 않자 이제 맨해튼 미드타운의 일부 상점에는 훈련견마저 등장했다. 최근 34번가에 위치한 드럭스토어 CVS에서는 매장 입구 주변에서 K-9 훈련견을 쉽게 만날 수 있다. K-9은 미국에서 경찰견, 군견을 비롯한 훈련견을 지칭하는 단어다. 이들은 이 지역에 들끓는 좀도둑을 막기 위해 특별히 고용됐다. 훈련견 3마리와 조련사가 교대로 근무하는 일종의 보안 서비스다.

드럭스토어 입구에 붙은 경고문

드럭스토어 입구에 붙은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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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비스는 메이시스 헤럴드 스퀘어, 펜스테이션 등을 포함한 지역을 감독하는 민간관리회사 34번가 파트너십의 지원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K-9 훈련견의 역할은 좀도둑을 쫓아가거나 체포하는 것이 아니다. 유력한 좀도둑 용의자의 행동을 사전에 억제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뉴욕시경(NYPD) 출신으로 34번가 파트너십의 보안담당 부사장인 케빈 워드는 현지 지역 언론에 "이미 효과를 보고 있다"면서 "훈련견을 보고 바로 매장을 떠나거나, 아무 것도 훔치지 않고 나온 좀도둑들이 몇명 있었다"고 전했다. 폭스비즈니스는 "좀도둑에 시달리고 있는 뉴욕시 기업들이 이제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인 개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면서 미드타운 맨해튼에 등장한 K-9유닛이 최소 25건의 절도를 방지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최근 몇년간 뉴욕 곳곳에서 좀도둑 문제가 그만큼 심각해졌다는 점을 시사한다. NYPD에 따르면 지난해 뉴욕시 내 좀도둑 신고 건수는 6만3699건으로 전년 대비 2만건 이상 증가했다. 2000년대 중반과 비교하면 275% 늘어난 규모다. 가장 피해가 큰 매장은 맨해튼 그리니치 스트리트에 위치한 타깃으로 작년에만 646건의 절도를 신고했다. 브로드웨이 등에 위치한 듀앤리드 매장 3곳에서는 총 1000건이상의 절도가 보고됐다. K-9 훈련견들이 등장한 미드타운 남부의 경우 2021년 이후 좀도둑 신고가 60%가까이 증가했다. 소매매장에서 칼, 폭력 등이 동반된 절도는 2배 이상 늘었다. 뉴욕포스트는 "뉴욕이 ‘좀도둑의 낙원’이 됐다"고 전했다. 전미소매연맹에 따르면 2021년 한 해동안 미국 내 소매매장에서 도난 등으로 발생한 손실 규모만 무려 945억달러(약 124조원)로 집계된다.

뉴욕 맨해튼 34번가에 위치한 CVS 매장 앞에 좀도둑을 막기 위한 K-9훈련견이 대기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 34번가에 위치한 CVS 매장 앞에 좀도둑을 막기 위한 K-9훈련견이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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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의 한 나이키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일주일에 몇번씩 누군가가 상품을 훔쳐 나가려는 것을 보게 된다"며 "주로 사람들이 혼잡할 때 (도둑질을) 시도한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때때로 직원이 개입에 나서지만 이조차 쉽지 않다. 자칫 칼이나 흉기에 맞아 다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탓이다. 뉴욕 퀸즈지역에서 오랜기간 델리를 운영하다 사업을 접었다는 한 교민은 "그냥 가져가게 놔 두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경찰을 불러도 도난 당한 물건을 다시 돌려받는 정도가 최대 조치고, 이 경우 가끔 크고 작은 보복이 돌아오기도 한다고. 소액 절도론 좀도둑을 체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드럭스토어 월그린스 내부. 맥주 1캔을 구입하더라도 직원을 호출해 열쇠로 플라스틱 문을 열고 꺼내야만 한다.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드럭스토어 월그린스 내부. 맥주 1캔을 구입하더라도 직원을 호출해 열쇠로 플라스틱 문을 열고 꺼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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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는 1000달러 미만의 절도를 경범죄로 간주한 법 등이 이러한 범죄를 더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잇따른다. 도난 상품이 버젓이 재판매되고 있는 상황이 종종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월그린스는 "최근 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도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약 4000개 이상의 매장을 대표하는 연합 ‘상점보호를 위한 단체행동’은 "뉴욕에서 소매점 절도 문제는 위기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던 뉴욕시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작년 12월 별도의 회의를 열고 급증한 소매매장 절도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애덤스 시장은 "실질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불과 20분도 채 되지 않아 자리를 떠났다. "그냥 가져가게 놔 두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는 교민의 씁쓸한 미소가 다시 한번 떠오를 따름이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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