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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세권을 아시나요" '슬친자'들의 조용한 '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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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 강백호와 서태웅이 포옹을?
'불꽃남자' 정대만 예민한 캐릭터로 변신
'슬친자'들이 원하는대로 그려지는 슬램덩크
'플박' 찾아 오픈런에 대리 구매까지

"정대만 프박 코드입니다! 기한 내에 뽑아주세요! 그리고 후기도 꼭 남겨주세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 올라온 말이다. 이 트윗 메시지는 슬램덩크 팬들 사이에서 수십번 리트윗(공유) 되면서 "집 근처 프박을 빨리 찾자"는 반응이 이어졌다. '프박'은 프린팅박스의 줄임말로 PC 또는 스마트폰내 문서나 사진을 출력할 수 있는 무인 기계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 설치돼있다. 복사 등 기본 사무 업무는 물론 정부 기관의 민원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또 그림을 그린 뒤, 이를 프박을 통해 출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프박에 아마추어 작가들이 그린 슬램덩크 등장인물 이미지가 올라오면서,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슬친자'(슬램덩크에 미친 자)들은 선수들의 새로운 이미지가 올라오면 프박 기계로 달려가, 그림을 출력한다. 이 때문에 일부 프박의 경우 팬들이 몰리면서, 오픈런까지 발생한다. 다만 작가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없다. 저작권이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에게 있기 때문이다.


사이 좋은 강백호·서태웅 찾아 오픈런…프린팅 용지 소진까지

기자가 지난 25일 오전 10시 방문한 서울 강북구, 노원구에 있는 CU편의점에는 슬램덩크 이미지를 출력하려는 팬들 수십여명이 몰렸다. 편의점을 찾은 한 고객은 "저 기계가 뭐길래, 이렇게 줄을 서 있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가 하면, 편의점 밖에서는 이 모습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서너명씩 몰렸다. 결국 이 프박은 12시에 인쇄 용지가 다 떨어졌다. 그 사이 원하는 슬램덩크 이미지를 출력한 팬들은 뿌듯한 미소를, 용지가 다 떨어져 헛걸음한 팬들은 한숨을 내뱉는 등 희비가 엇갈렸다.


서울 강북구 노원구 한 대형마트에 설치 된 프린팅박스. 사진=한승곤 기자

서울 강북구 노원구 한 대형마트에 설치 된 프린팅박스. 사진=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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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친자들에 따르면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미지는 정대만이라고 한다. 정대만은 '불꽃남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선이 굵은 캐릭터다. 그러나 플박에서의 정대만은 예민한 성격으로 각종 불만을 쏟아낸다. 이 모습은 슬램덩크 정식 연재판이나 극장 개봉작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작가들이 팬들의 요청을 받아 그리거나, 정대만의 성격을 상상 또는 극대화하며 만들어낸 캐릭터다.

인기 있는 또 다른 이미지는 앙숙 강백호와 서태웅이 다정하게 함께 있는 모습이다. 이 역시 슬램덩크 정식 연재판에서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다. 강백호가 좋아하는 채소연(주장 채치수의 여동생)은 서태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예민한 정대만, '브로맨스' 있는 강백호와 서태웅은 플박을 통해서만 만나볼 수 있는 캐릭터다. 슬친자들이 플박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세권' 신조어…'플박'은 10배 이상 증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슬친자들 사이에서는 '프세권'이 있는 슬친자들에게 '대리 구매'를 요청하기도 한다. 프세권이란 역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인 역세권을 빗댄 말로 '프린팅박스'가 설치된 편의점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을 말한다.


슬램덩크 인기와 맞물려 플박이 인기를 끌다 보니 프린팅박스 이용자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편의점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에 따르면 지난해 1월 CU에 첫 도입된 프린팅박스는 초기 30여 점에서 운영을 시작해 현재 약 350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점포당 월평균 이용 건수 역시 100건에서 약 400건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CU가 운영 중인 20여 종의 생활서비스 중 택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이용률 (운영점 기준)이다.


고객이 CU에서 프린팅박스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출처=BGF리테일 제공

고객이 CU에서 프린팅박스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출처=BGF리테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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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팅박스 서비스의 주요 이용자는 Z세대다. 이용자 중 10대(27.7%)와 20대(43.1%)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부담 없는 가격에 나만의 특색 있는 굿즈를 직접 만들 수 있어 개인화된 취향을 반영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점포는 'CU에이케이&홍대점'이다. 해당 점포는 국내 대표 덕후 성지로 불리는 AK플라자 홍대점 1층에 위치한 곳으로 월평균 1600건이 이용되며 일반 점포 대비 4배 이상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박희진 BGF리테일 서비스플랫폼팀장은 "앞으로도 CU는 덕후들의 문화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 제휴 및 개발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슬램덩크 이미지 출력으로 플박 오픈런까지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10·20대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플랫폼으로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프린팅박스는 셀프 사진관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면서 "그림 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여러 이미지 등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양하게 출력할 수 있어 (MZ세대들의) 놀이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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