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아시아경제는 ‘하루만보하루천자’ 뉴스레터 독자를 위해 매일 천자 필사 콘텐츠를 제공한다. 필사 콘텐츠는 일별, 월별로 테마에 맞춰 동서양 고전, 한국문학, 명칼럼, 명연설 등에서 엄선해 전달된다. 오늘의 콘텐츠는 이정림의 <겨울 산에서 시작하리라>(1986) 2회차 마지막 콘텐츠다. 글자수 1000자.
<사진=아시아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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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에서 나는 고행하는 수도자처럼 걸음을 옮긴다. 추위로 다리는 뻣뻣하지만, 돌아갈 수 없으므로 산을 오른다. 오르지도 않고 돌아갈 요량이었다면, 처음부터 산에는 오지 않았어야 한다. 올라가야 한다는 한 가지 목표가 있기에 나는 추위를 가르고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힘들고 험한 길이라 해도, 목표가 있는 도정(道程)은 언제나 즐겁다. 힘껏 노력은 했으나 역부족으로 목표에는 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은 보람이 있다. 인생은 과정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인생의 끝을 내가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그 힘든 길이 차츰 익숙해진다. 견디기 어려운 수도자의 삶이 자신에게는 알 수 없는 기쁨이 되는 것처럼, 처음에는 돌아가고 싶었던 후회가 나중에는 떠나오길 잘했다는 흐뭇함으로 바뀌어 간다. 추운 겨울에 산에 가는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어려움이 즐거움으로도 변할 수 있는 승화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겨울 산은 엄격함을 요구하는 수도원의 규율과도 같다. 그러나 그것은 보람과 즐거움으로 나아가는 높은 경지의 고행(苦行)이다.

(중략)

겨울 산을 내려온다. 내려오다 문득 뒤돌아보니, 산은 언제나 그렇듯 그 곳에 서 있다. 다만 그 곳에 오르는 사람들만이 바뀌어져 갈 뿐이다. 산은 그저 산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 곳에 오르는 사람들만이 거기에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할 뿐이다. 인간보다는 영원한 것이기에, 그 앞에서 유한(有限)의 가치도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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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아침에서부터 열리고, 일 년은 정월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겨울 산에 오면 나는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 새해 새 아침의 그 경건함을, 그 새로움을, 그 희망을 산은 커다란 가슴으로 품고 있다가 내게 건네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해 새 아침에나 진지한 마음으로 만나 보는 겸손이나 아름다움도 산은 늘 새롭게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겨울 산에서 아침을 맞고 싶다. 그 눈부시게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면서, 나는 다시금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싶다. 그리하여 나의 새해를 그 장엄한 겨울 산에서 시작하고 싶다.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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