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대통령이 방문하신다고요? 죄송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반도체 부품기업 A사 직원은 최근 대통령실로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공장 방문을 해도 되겠냐는 전화를 받았다. A사는 일본이 보유하고 있던 부품 기술의 국산화에 성공한 곳으로 윤 정부가 육성하려고 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우수기업이다. 해당 직원은 아직 기업이 대통령을 초청할만한 여건이 되지 못한다며 정중히 거절했으나 속사정을 들어보니 이유는 따로 있었다.
코스닥 상장사인 A사는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자였던 시절 한차례 방문했다 곤혹을 치렀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의 영향으로 당선가능성이 높은 야권의 대선후보가 A사를 방문했다는 소식이 각종 포털 주식토론방을 휩쓸었다. 게시판에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A사를 밀어줄 것이다", "어쩐지 A사 대표가 호남출신이더라"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돌면서 주가가 출렁였다. 졸지에 정치테마주가 된 것이다. A사 직원은 지라시성 정보에 대한 사실확인을 묻는 주주들의 전화에 대응하고 포털에 게재된 글을 신고하느라 밤을 새야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사업이나 그 성과를 홍보하고 싶을 때 대통령이나 관료, 유력 정치인이 종종 기업을 방문한다. 이들이 현장을 찾는 게 문제는 아니다. 소통을 통해 애로사항을 발굴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면 기업에도 이득이다. 하지만 여태껏 취재 현장에서 만난 기업 대표들은 이들의 방문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특정 정치세력과 결탁한 기업으로 오해받기 일쑤라는 것이다. 진심으로 얘기를 들어주기보다는 사진 몇장 찍고 급히 떠나는 사례도 많았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기업의 사기를 꺾는 경우도 있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과거 모 특허청장이 우리 회사 생산라인에 방문한적이 있었는데 '소문 듣고 왔더니 별 거 없네요'라며 지나가듯 던진 한마디가 마음아팠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A사처럼 수출 위주의 B2B(기업간 거래) 사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은 대통령의 현장 방문이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찾았다고 해서 딱히 매출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괜히 응대 실수라도 하면 미운털만 박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통령이 방문한다고 하면 가뜩이나 일손도 부족한데 수일 동안 전사 직원이 매달려 준비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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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B2B 기업은 뒤에서 지원하고 되도록 현장 방문은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기업이나 소상공인 위주로 하는 게 어떨까. 상품성 없는 못난이 감자나 코로나19로 수출길이 막힌 바다장어를 히트시켜 소비촉진을 일으킨 '백종원 모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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