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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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조선의 선비는 글씨에 그 사람의 정신과 혼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에서는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 불렀지만 우리나라는 서예(書藝)라 하여 법과 도보다는 예술적 가치에 무게를 실었다. 추사 김정희는 "가슴속에 만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글씨는 그 사람을 비추고 드러내는 거울이었던 셈이다.


몇 해 전 지인의 추천으로 온라인 미술품 경매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고미술 작품을 둘러보는데 한 페이지에 나란히 놓인 서예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왼편의 작품은 일당 이완용의 글씨였고, 오른쪽 작품은 백범 김구의 글씨였다. 두 작품의 크기나 주제는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경매 가격은 천양지차였다. 김구 선생의 글씨가 수백을 호가하는 사이 이완용의 글씨는 경매 시작가 20만원에 멈춰있었다.

이완용은 어려서부터 서예에 대한 남다른 재주를 인정받은 당대 명필이었다. 그는 같은 집안 세력가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가 14세부터 당대 최고 서예가에게 서법을 사사했다. 글씨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1912년 국내 최초의 근대적 미술학교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를 창립해 서예 교육에 앞장설 만큼 후학 양성에도 기여한 공로자였다. 하지만 그의 삶과 친일 행적으로 그의 작품은 시장에서 거의 거래되지 않을뿐더러 가격도 헐값에 매매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귀띔했다.


서예는 작품과 인격을 동일시한다. 추사의 글씨가 귀양 전과 후 많은 차이를 보였듯 필자의 삶과 철학, 정신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를 집필한 검사 출신 필적학자 구본진은 이완용의 글씨에 대해 “정신이나 기상, 골격이 모두 약하다”며 “손재주가 발달해서 획의 운용이나 글씨 구성에서 기교가 있지만, 절제미가 없고 품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 삶의 궤적이 글씨에도 녹아든 모양이다.

안중근 의사 유묵.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사진 = 문화재청

안중근 의사 유묵.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사진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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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을 앞둔 영화 ‘영웅’에서 도마 안중근은 극 초반에 한 번, 극 후반에 한 번 글씨를 쓴다. 현재 전해오는 안 의사의 유묵은 총 200점 이상이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는 57점만 인정하고 있다. 모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뤼순 감옥에서 남긴 한문 휘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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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자신의 모든 휘호마다 ‘大韓國人 安重根’ 서명과 함께 무명지 한마디가 잘린 자신의 왼손바닥에 먹물을 묻혀 찍어 낙관을 대신했다. 그는 1909년 2월 7일 그라스키노 근처 카리의 여관에서 김기룡, 백규삼 등 12명의 동지와 왼손 약지를 끊어낸 뒤 피로서 태극기 앞면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이란 글씨로 독립에 대한 맹세를 다졌다.


단지동맹부터 이토 히로부미 사살과 사형집행까지 안 의사의 1년을 그린 영화에서 잠시간 비춰지는 글씨에는 강한 힘과 기개가 느껴진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9시, 사형 집행장에 나가기 직전 안중근 의사는 자신에게 글씨를 청한 호송관 지바 도시치(千葉十七) 상등병을 위해 마지막 휘호를 남긴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 적은 그의 유묵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은 대한민국 국군 표어로 오늘까지 군인정신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회자되고 있다.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그의 글씨에 대한 세인의 평가는 글씨 너머에 깃든 그 삶에 대한 존경과 숭앙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예잇수다]글씨에 깃든 혼과 정신 원본보기 아이콘
편집자주예잇수다(藝It수다)는 예술에 대한 수다의 줄임말로 음악·미술·공연 등 예술 전반의 이슈와 트렌드를 주제로 한 칼럼입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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