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축구 과몰입과 정치의 상관관계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가나, 오늘 밤 요렇게 찢어 주마."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8일 열린 카타르 월드컵 ‘한국 대 가나’전 직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쪼개진 ‘가나 초콜릿’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남겼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의 SNS 소식을 전한 기사 댓글에는 ‘상대 팀에 대한 예의가 없다’, ‘인종차별적이다’라는 누리꾼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그 비판을 의식해서였을까. 정 비대위원장의 SNS에는 현재 이 글이 보이지 않는다.
정 비대위원장은 가나 초콜릿을 활용해 가나에 승리하고자 하는 의지를 유머러스하게 담았을 뿐인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찢는다’는 표현이 상대에 대한 무시와 멸시를 담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하필 가나를 초콜릿에 비유한 점이 인종차별로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요즘 자주 쓰이는 단어로 표현하자면, 축구에 ‘과몰입’해 5선 국회의원이자 여당 비대위원장이라는 본분을 잊은 셈이다.
정치인들의 축구 과몰입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일반적인 스포츠와 달리 축구 등의 팀 스포츠는 단결력과 결속력을 강조한다. 특히 전 세계적 축구 경쟁전인 월드컵은 국가대표팀의 단결된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조차 하나로 묶는 효과를 낸다. 그렇기에 대표팀의 성적이 좋을 경우 국가에 대한 자긍심도 불어넣어 줄 수 있고, 나아가 정부 지지율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4강 신화’를 쓴 2002년 올림픽이 좋은 예다. 하지만 벌써 20년 전 일이다. 그 새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우승을 하더라도 메우기 어려울 만큼 골이 깊어졌다.
축구는 그저 축구일 뿐이고 갈등의 골을 메울 수 없다는 사실은 정치인들도 이미 증명한 바 있다. 지난 18일 여야는 22년 만의 친선 축구 경기를 진행했다. 지난 2000년 ‘한나라당팀’ 대 ‘연합팀(민주당·자민련·무소속)’ 대결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여야 의원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땀을 같이 흘리는 모습을 보면 국민들이 편안해할 것"이라고 했고, 대통령실 인사들도 귤을 선물하러 방문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사진도 여러 장 찍혔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다.
열흘가량 지난 현재, 국회의 상황을 보면 22년 만의 친선 축구 경기가 얼마나 여야간의 거리를 좁히는 데 기여했는지 의아해진다. 예산 부문에서는 여야의 대립이 이어지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훌쩍 넘겨 통과될 모양새다. 정부는 벌써 ‘준예산’을 언급하고 있고, 거대 야당은 이에 맞서 ‘감액한 자체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여당의 존재감은 야당에 눌려 잘 보이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 여야가 극적으로 합의를 보는가 했더니,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거취를 놓고 다시 대립하면서 국정조사 추진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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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무당층이 30%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 정치가 그만큼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점차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국민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은 협력하는 가운데 국회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는 여야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축구라는 이벤트성 행사로 협력하는 흉내만 내는 정치로는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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