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커피? ‘봉화 기적’ 만든 커피믹스의 희로애락
221시간 만에 생환한 두 광부, 커피믹스 먹으며 버텨
‘아재 커피’로 불리다 ‘봉화 기적의 커피’로 재조명
1945년 미군이 들여온 인스턴트 커피가 커피믹스 원조격
1997년 외환위기 때 커피 심부름 여직원 줄자 임원들 사이 커피믹스 인기
경북 봉화군 아연 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작업자 2명이 10일 만인 4일 오후 11시 3분께 구조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생환한 고립자들이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 사진=소방청 제공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커피믹스 마시며 버텼습니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 매몰된 광부 2명이 사고 열흘 만인 4일 밤 11시쯤 기적적으로 구조되면서 한 말이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봉화군 재산면 아연 채굴광산 제1 수직갱도에서 작업 중 토사 900t(업체 추산)이 쏟아지며 지하 190m 지점에서 고립됐다.
경북소방본부 소속 관계자는 구조된 작업자가 치료받고 있는 안동병원 응급실 앞에서 이날 새벽 기자들과 만나 "고립자들은 가지고 있던 커피믹스를 밥처럼 드셨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충분한 물과 열량이 높은 커피믹스로 배고픔을 달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견이 쏟아졌다.
12g짜리 맥심 모카골드 한 봉지 열량은 5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과 카페인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광부들의 기운을 북돋아 생존에 도움을 줬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이어졌다. 주치의는 "빠르면 수일 내에 퇴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을 정도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갱도에 갇힌 이들에게 커피믹스는 한줄기 빛이었던 셈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당시 13일 만에 구조된 18세 소녀가 가장 먼저 찾은 것도 커피믹스 맛의 캔커피였다. 이만하면 커피믹스는 단순 기호 식품이 아니라 재난 상황에서의 비상식량으로 불릴 만하다.
◆ 촌스러운 ‘아재 커피’? MZ세대도 관심
사실 커피믹스는 일명 '아재 커피'로도 유명하다. 예컨대 40·50대 남성 직원들은 "식당 밥값 절반에 육박하는 커피를 마시지 말고, 회사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커피믹스를 먹으면, 얼마나 좋냐"라는 말을 곧잘 한다.
MZ세대들 사이에서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카페에서 함께 있는 시간도 사는 거다"라고 반박한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물론, 카페 문화를 지인들과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커피믹스는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촌스러운 존재로, 중년 남성들의 전유물로 통했다. 그러나 이른바 '봉화 기적의 주인공'으로 떠오르면서 청년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커피믹스의 원조는 인스턴트 커피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과 함께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 위협이 있던 시절이라, 미군들은 극도의 긴장과 피로를 커피로 달랬다.
물론 1896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망명(최근 역사학자들이 피란 의미에 '파천'이 아닌 '망명'으로 쓰자는 주장에 따라 망명이라 표기)' 때 커피를 흠모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커피 대중화만 놓고 보면, 당시 한국인들에게 공짜로 커피를 나눠준 미군들의 역할이 컸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커피는 대부분 다방에서 소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커피와 다방의 사회사.인물과 사상사 2009'에 따르면 한국전쟁 직전 서울에 100여곳에 불과했던 다방은 1959년 800여곳, 1969년 5000여곳으로 늘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인구와 경제수준을 감안하면 커피 산업은 그야말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1970년대 들어서 '솔루블(soluble) 커피 시대'가 열리며 시장에서의 인스턴트 커피 경쟁도 치열해진다. '솔루블 커피'란 물에 녹는 커피라는 뜻을 말한다. 유리병에 담긴 인스턴트 커피 제품과 비교해, 커피·크리머·설탕을 섞은 커피믹스 형태의 제품과 구별짓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로 알려졌다.
당시 커피 시장 기업들의 라이벌 구도를 보면 1990년대 초반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내놓으며 등장한 스위스의 네슬레와 미국 제너럴푸드와 기술제휴한 동서식품이 처음으로 국내에서 생산한 커피 '맥스웰하우스'가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서식품이 1976년 1인용 봉지 커피믹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한국인들의 선택은 지금의 커피믹스로 기울기 시작했다. 여기에 1978년 커피자판기가 등장하고 1987년에는 설탕량을 조절하는 스틱형까지 나오면서 커피믹스의 시대가 열렸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이미지.1990년대 후반을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서 배우들이 일명 '커피 심부름'을 하고 있다. 사진=네이버 영화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 IMF 구조조정의 역설 … 커피믹스 전성시대
"미스김, 여기 커피 한잔 ~" 일각에서는 커피믹스가 이렇게까지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던 계기로 1997년 외환위기를 꼽기도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여파로 회사마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고, 이른바 '미스김'들이 가장 먼저 해고 대상에 올랐다.
이렇다 보니 여직원들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던 회사 중역들은 본인들이 직접 커피를 타 마셔야 했는데, 이들을 구원한 게 바로 1초 만에 커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커피믹스였다. 여기에 '금 모으기 운동' 등 나라를 다시 살려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를 타고 높아진 노동강도와 함께 잦은 야근을 버틸 수 있게 만든 에너지도 커피믹스였다. 지금 거의 모든 회사 탕비실에 커피믹스가 놓여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종의 IMF의 역설인 셈이다.
모 CF 광고 문구와 같이 '커피 한잔의 여유'가 아닌 대량의 커피믹스를 훔치다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 2013년 회사 창고에서 커피믹스를 훔쳐 되팔다가 걸린 식품업체 직원은 절도 혐의로 입건됐다. 당시 '커피믹스는 공짜 아니냐' '회사에 지나친 대응'이다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빼돌린 양이 3400만원어치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여론이 뒤집히기도 했다.
누구나 손쉽게 바로 먹을 수 있는 커피믹스 인기에 힙입어 관련 시장 규모는 1조원을 넘기기도 했지만, 원두커피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2018년 8512억원에 달했던 시장 규모는 2019년 7981억원, 2020년 7462억원에 이어 지난해 7096억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과 함께 비상식량 성격으로 인기를 끌며 한국 사회에 등장한 커피믹스의 희로애락인 셈이다.
이번 광부의 극적인 생환에 커피믹스가 큰 역할을 하면서, 일부 네티즌들은 '생환한 광부들을 커피믹스 광고모델로 써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상장 첫날 70% 폭등 "엔비디아 독주 끝나나"…AI ...
나아가 일각에서는 아예 '밈(인터넷상에 재미난 말을 적어 넣어서 다시 포스팅 한 그림이나 사진)' 유행을 타고 제품명을 '봉화 커피믹스'로 하는 이벤트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해방 이후 수많은 다방을 통해 전 국민의 기호품으로 자리 잡다, 아재 커피로 전락한 커피믹스가 MZ세대들의 관심을 받으며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