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처럼 국가 존재해야
집회 동원 경찰과 이태원 오버랩
잃지 않아도 될 소를 잃은 상황
며칠 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축제에 다녀왔다. 나는 거기에서 야외 강연을 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하루 전에 다음과 같은 연락이 왔다. 시위가 열릴 것이어서 장소를 실내로 변경하겠다는 것이었다. 과연, 시청역에 내려서 출구로 나오자마자, 여러 시위대가 눈에 띄었다. 세 개의 시위가 겹쳤다고 했다. 태극기를 든 사람들과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민주노총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만큼이나 많아 보이는 경찰들도 투입됐다. 나는 그들을 지나 서울시청 인근의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 담당자는 나에게 강연 장소가 다시 야외로 변경됐다고 말했다. 시청 앞 광장은 시위대로 둘러싸여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확성기를 사용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이 행사에 참여하려는 이십여 명이 앉아 있기는 했으나 그들에게 나의 목소리가 닿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주최 측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아 알겠다고 답하고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김민섭입니다’ 하고 인사하자 마침 옆의 민노총 시위대에서도 누군가가 인사를 시작했다. ‘어디 지부 누구입니다’ ‘우리 동지들 투쟁’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명이 왔는지 그 인사가 계속 이어졌다. 아아, 나는 저 목소리를 이겨야 하는 것인가. 내가 목소리를 조금 높여 사람들에게 나의 목소리가 들리느냐고 묻자 그들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도 나의 언젠가의 노동에 대한 말을 해야 하는 참이었다. 시위대와 내가 그다지 다를 건 없겠다. 그들은 단체시위를 하고 나는 1인 시위를 한다. 이기고 말고 할 건 없을 것 같아서 나는 다른 때보다 적당히 더 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서로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일을 하는 것이다. ‘거기도 힘내십시오’ 하는 마음이 됐다.
강연이 끝나고,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청량리역으로 가서 강릉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문득 오늘이 핼러윈 데이인 것이 떠올라 이태원에 가면 재밌겠지 싶기도 했지만, 주말마다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만나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뉴스 속보를 보았다.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했다. 그간 허망한 죽음들이 몇 있었다. 2009년 화왕산 억새 태우기 축제에서 불이 잘못 옮겨붙어 7명이 죽었다. 2014년에 경기도 판교 야외공연장의 환풍구가 내려앉아 16명이 죽었다.
그런데, 어느 사고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이태원에서의 사고는 조금 더 허망하다.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그 시위 현장에는 그렇게 많은 경찰이 있었는데, 시위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태원에는 137명의 경찰이 배치됐다고 한다. 누가, 어디에, 언제, 모여서 어떻게, 무엇을, 왜 하겠다고 신고된 집회가 있고, 그렇지는 않지만 더욱 많은 사람들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 신고되지 않은 집회가 있다.
핼러윈 데이는 주최 측도 없고 그에 따라 책임질 주체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데 오히려 국민의 안전을 위한 행정력을 쏟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처럼, 그렇게 국가는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아마 내년에는 이 특정 행사를 위해 많은 경찰이 동원될 게 분명하다. 소를 잃었으나 외양간은 고쳐야 하고,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그거 고치지 않는 놈은 앞으로 소를 못 키운다. 다만 나는 집회에 동원된 경찰의 숫자와 그날 이태원이 자꾸 겹치는 것이다. 잃지 않아도 될 소를 잃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검은 월요일에 줍줍 하세요"…59만전자·400만닉...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