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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규의 야구라는 프리즘]시속 101마일보다 중요한 김서현의 4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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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서도 사라진 '나흘 연투'…네 경기서 총 127구 던져
젊은 강속구 투수 K야구의 미래…어린 투수 혹사 참담
휴식 없인 부상 가능성 더 커져…야구산업 미래 갉아먹지 말아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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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 브래든턴의 레콤파크에서는 한국 야구 비공인 최고 구속 기록이 나왔다. 주인공은 한국 청소년 국가대표 투수 김서현(18·서울고). 대표팀은 이날 코로나19로 1년 연기된 제30회 U18 야구월드컵 슈퍼라운드 일본전을 치르고 있었다. 김서현이 7회 일본 마지막 타자 아사노 쇼고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은 패스트볼은 대회를 주관하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중계 화면에 시속 101마일(162.5㎞)로 찍혔다.


한국 프로야구를 관장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아마추어 조직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투구 구속을 별도로 집계하지 않는다. 구단 스피드건과 구장 전광판 등을 기준으로 한 한국 야구 ‘비공인’ 역대 최고 구속은 2012년 9월 5일 LG 투수 레다메스 리즈가 기록한 시속 162㎞다. 한국인 투수로는 안우진(키움)이 2020년과 올해 공식전에서 시속 160㎞를 던진 게 최고였다.

김서현의 시속 101마일 강속구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한·일전 직후 한동안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인 야후 재팬의 스포츠 섹션에서 가장 많이 조회됐다. 김서현은 다음날 대만을 상대로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그가 던진 공은 중계 화면에서 시속 102마일로 기록됐다. 측정 정확도에는 이견이 있다. 김서현이 아사노에게 던진 시속 101마일 공은 구장 전광판에 시속 97마일(156㎞)로 표시됐다. 물론 시속 156㎞도 엄청난 강속구다.


이번 대회에서 김서현에겐 구속보다 더 중요한 숫자가 있었다. ‘4’다. 김서현은 16일 일본전, 17일 대만전에 이어 18일 멕시코전, 19일 일본과의 3·4위전까지 나흘 연달아 등판했다. 네 경기에서 모두 20구 이상씩 도합 127구를 던졌다.


나흘 연투는 성인이 뛰는 프로야구에서도 거의 사라졌다. 올해 KBO리그 정규시즌에서 나흘 이상 연투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2016년에는 나흘 이상 연투(더블헤더는 이틀로 계산)가 26회로 2013년 뒤 가장 많았다. ‘투수 혹사’로 악명 높았던 김성근 감독의 한화에서만 아홉 번 나왔다. 바로 투수 혹사에 대한 비판이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김 감독이 5월에 퇴진한 2017년에 나흘 이상 연투는 2회로 크게 줄었다. 2017~2022년 여섯 시즌 동안 프로에서 나흘 이상 연투는 연평균 세 번 나왔다.

2020년 뒤 나흘 이상 연투는 모두 8회. 가장 많은 투구 수는 2021년 장현식의 61구다. 대개 한두 타자를 상대하는 원포인트 구원투수들이 나흘 연투를 했다. 그런데 김서현은 이번 대회에서 나흘 동안 137구를 던졌다. 두 번은 2이닝 이상이었다. 같은 투구 수라도 공수 교대로 일정 시간을 쉬고 다시 던지는 멀티 이닝이 투수에게는 더 좋지 않다. 김서현은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을 받고 복귀한 지 1년이 되지 않았다.


KBSA는 2018년부터 고교 투수 하루 최다 투구 수를 105개로 제한했다. 더불어 31~45구를 던지면 하루, 46~60구면 이틀, 61~75구면 사흘, 76구 이상이면 나흘을 의무적으로 쉬게 했다. 어린 투수들의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프로·아마추어 야구가 2014년 공동 채택한 ‘피치 스마트’ 프로그램을 따랐다.


이번 대회에는 50구 이상 투구 시 연투 금지라는 상대적으로 완화된 규정이 적용됐다. 4강에 오른 미국(우승), 대만(준우승), 일본(3위), 한국(4위) 네 팀을 대상으로 ‘피치 스마트’와 KBSA 규정을 위반한 등판이 몇 번 있었는지 집계했다. 미국은 1회, 대만은 2회, 일본은 4회, 한국은 8회였다. 한국이 다른 세 팀의 합산보다 더 많았다.


김서현뿐만이 아니다. 투구 수 1~4위 가운데 한국 투수가 세 명이다. 김서현이 213구로 2위, 윤영철이 233구로 1위, 황준서가 182구로 4위다. 한국 고교 투수의 국제대회 혹사가 이번 대회만의 일은 아니다. 2015년 일본 니시노미야에서 열린 27회 대회에서 한국은 3위를 했다. 당시 경기의 여덟 팀을 빌 제임스가 고안한 ‘누적 피로도’라는 지표로 평가해봤다. 박세진, 이영하, 최충연 등 한국 투수 세 명이 1~3위를 나란히 차지했다. 팀 전체로는 2위 캐나다의 두 배가 넘는 압도적인 1위였다. 참담할 정도였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대만의 저우쭝즈 감독은 투수 황바오뤄를 두 경기만 등판시키기로 그를 드래프트한 구단과 약속했다. 하지만 두 경기를 치른 뒤에도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구원으로 17구를 던지게 했다. 이 일로 저우 감독은 대회 뒤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한국 대표팀 감독은 김서현의 나흘 연투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야구선수 아들을 둔 최승표 코치라운드 대표는 "묻는 사람이 없기에 더그아웃의 생각을 알 길이 없었다"라며 야구 미디어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프로야구 홀드왕 출신인 차명주 KBSA 이사는 은퇴 뒤 투구 역학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다. 차 이사는 "같은 공 개수라도 휴식이 짧은 연투가 투수에게 더 위험하다. 지금 고교 투수는 하루 불펜 투구가 30~50개로 과거보다 적다. 휴식 없이 많은 공을 던지면 부상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선수는 좀체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선수가 던질 수 있다고 말해도 감독이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야구도 미국에서 시작된 ‘구속 혁명’을 따르고 있다. 올해 KBO리그 포심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144.2㎞로 역대 최고다. 포심 평균 구속이 시속 150㎞를 넘긴 내국인 투수가 일곱 명 나왔다. 고우석(시속 153.5㎞)과 안우진(시속 153.4㎞)을 비롯해 모두 스물네 살 이하의 젊은 투수다. 고교에서도 김서현 외에 올해 덕수고 심준석이 연습경기에서 시속 160㎞를 던졌다.


야구팬들은 홈런 못지않게 강속구에 열광한다. 세계 최고 축구클럽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의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때로 가장 비싼 계약이 가장 싼 계약이 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스포츠 구단과 산업의 성공에 스타 파워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점에서 속속 등장하는 젊은 강속구 투수들은 한국 야구와 산업의 미래다. 혹사는 이 미래를 갉아 먹는다. 선수의 미래까지도.


한국야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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