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등산을 할 때 사람들마다 페이스(속도)가 다르다. 어떤 시점에서는 조금 빠르게 갈 때도, 천천히 갈 때도 있다. 각자의 템포(속도)와 전략이 있는 것이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담당 사장은 최근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반도체 경쟁사들의 잇단 차세대 제품 개발 분위기를 경계하는 투자기관의 질문이 나오자 적당한 비유로 '등산'을 꺼내들었다. SK하이닉스도 정해진 속도와 전략에 따라 첨단 제품 개발의 길을 가고 있으니 조바심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우회의 표현이었다.
노 사장은 2분기 최대 실적을 낸 SK하이닉스 실적 발표 현장에서 "잘 했다" "앞으로 더 잘 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격려를 듣기는 커녕 경쟁사들의 첨단 제품 경쟁에 대한 회사의 대응이나 반도체 수요 위축 분위기에 대한 불안감, 이에따른 회사의 재고·수익성 강화 전략 등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만큼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세계 경제 불확실성은 커졌고 치열해진 업계간 생존 경쟁 속에 경쟁사들이 테크 노드를 짧게 가져가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데 대한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실제 메모리반도체 업계는 낸드 적층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미국 마이크론이 처음으로 232단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한데 주목하고 있다. 현재 메모리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가 시장점유율 35.3%로 1위를 기록하고 있고 뒤이어 일본 키옥시아(18.9%), SK하이닉스(솔리다임 포함) 18.0%, 웨스턴디지털(12.5%), 마이크론(10.9%) 순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에서는 주로 128단과 176단 제품이 유통되고 있고, 선두주자 간 200단 이상 제품의 개발 경쟁이 진행 중인데 '톱3' 밖에 있던 마이크론이 처음으로 232단 개발을 마치고 양산에 돌입한 것이다.
최고층 낸드 경쟁에서 뒤통수를 맞은 SK하이닉스는 곧장 238단 낸드 메모리 개발 성공을 전했다. 내년 상반기부터 238단 512Gb 4D 낸드플래시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와는 별도로 올해 176단 제품 생산 비중을 70% 수준으로 높여 업계 최고 수준의 수익성과 비트그로스(비트 당 출하량 증가율)를 달성하는데 주력한다는 전략도 공개했다. 1~2분기 더 빨리 200단 이상 제품을 개발하는 것 보다 고객 친화적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단위당 원가를 낮춰 수익성을 높이는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하면서도 낸드 적층 경쟁에서 결코 경쟁사에 뒤질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도 초미세 공정 경쟁에 불이 붙었다. 삼성전자가 6월 말 세계 최초 3나노 파운드리 양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하자마자 미국과 일본이 연내 차세대 반도체 공동 연구센터를 설립해 2025년 2나노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제시했다. 업계 1위 대만 TSMC와 삼성전자도 2025년에 2나노 공정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2나노 시대에 누가 더 빨리 진입할 수 있느냐가 파운드리업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이미 업계간 초미세공정 '최초' 타이틀 경쟁이 시작된만큼 수율이 올라오기 전에 양산부터 시작해 고객을 확보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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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해진 반도체 경쟁 분위기는 '업계 최초' 타이틀이 붙는 숫자 경쟁으로 고스란히 연결되고 있다. 잠시라도 멈칫하면 빨라진 첨단 기술 개발 경쟁에서 경쟁사에 뒤져있다는 인식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 위기다. 이는 곧 고객사 확보와 시장 점유율 변동으로 연결된다. 빨라진 기술개발 속도에 뒤처지지 않도록 정부는 반도체산업 지원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 지원에 대한 큰 그림과 방향만 보고 손뼉을 치기엔 반도체 숫자경쟁이 너무나 빠르고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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