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시진핑 홍콩 방문 '일국양제' 종료 예행연습
[아시아경제 베이징=조영신 특파원] 2047년 7월 1일 0시 홍콩섬 컨벤션센터. 중국인민공화국(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이 연주되면서 홍콩 특별행정구의 깃발인 골든바우하니아 기가 내려온다. 그리고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서서히 게양된다. 행사장에는 오성홍기만이 펄럭이고 있다. 앞으로 25년 뒤 있을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국가 두 체제)’ 종료식 모습이다.
홍콩은 중국의 흑역사를 지닌 곳이다. 청나라는 1차 아편전쟁에 참패한 후 1842년 영국과 난징조약을 맺었다. 이때 홍콩섬이 영국으로 넘어갔다. 청나라는 2차 아편전쟁 패전 후 홍콩섬 건너 주룽반도마저 영국에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1898년에는 주룽반도 북쪽 신제 지역을 1997년까지 조차할 수 있는 권리도 영국에 내줬다.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1982년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중국을 찾았다. 1979년 1월 미ㆍ중 수교 이후 수많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너도 나도 중국을 찾을 때다. 중국의 개혁ㆍ개방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 호재였다.
대처 총리와 마주한 이는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은 중국을 방문한 대처 총리에게 홍콩 반환을 요구했다. 영국은 신제 지역만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중국은 홍콩섬과 주룽반도, 신제 모두를 요구했다. 영국은 홍콩 영토를 반환하되 관리는 영국이 하겠다고 맞섰다.
이때 덩샤오핑은 영국에 일국양제라는 그럴듯한 안을 제시했다. 중국과 영국은 결국 1997년 7월 1일 홍콩을 반환하고, 반환 후 50년간 일국양제를 유지한다는 중ㆍ영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에 서명했다.
반환 5년 뒤인 2002년 중국은 홍콩 국가보안법(보안법)을 제정하려 했다. 홍콩인들은 반중국 인사 탄압 등을 우려하며 대규모 반대 시위에 나섰고, 해외 여론을 의식한 중국 정부는 한발 물러났다.
2014년 또다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중국이 친중 인사 만이 홍콩 행정장관에 입후보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직선제)를 정비하려 하자, 홍콩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홍콩 민주화 운동 즉 우산혁명이 일어났다. 2018년과 2019년에도 시위가 일어났다. 중국 정부가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개정을 추진하자, 법 악용을 우려한 홍콩 시민들이 다시 격렬히 저항했다. 2020년에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직접 홍콩 보안법을 제정했다. 홍콩 입법회가 보안법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전인대가 대신 보안법을 제정, 통과시켰다.
지난해에는 일국양제의 틀을 완전히 흔든 법이 통과됐다. 전인대가 ‘항인치항(港人治港ㆍ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 대신 ‘애국자치항(愛國者治港ㆍ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의 원칙이 적용된 선거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개정된 선거법은 일국양제가 아닌 일국일제나 다름없다. 실제 지난 5월 실시된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했던 존 리 홍콩 보안국장이 당선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다음 달 1일 홍콩 반환 25주년 행사에 참석한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선출된 신임 행정장관 취임식에도 참석, 충성 맹세를 받는다. 시 주석의 이번 홍콩 방문은 2017년 홍콩 반환 20주년 행사 이후 5년 만이다. 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첫 외부 활동이다. 시 주석의 홍콩 방문은 홍콩이 중국 본토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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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5주년 홍콩 반환 행사가 2047년 7월 1일 일국양제 종료 행사를 25년이나 앞당긴 예행연습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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