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잠잠해졌는데 지난 한달 내내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과 장신구 논란이 이어졌다. 한국납세자 연맹에서 김정숙 여사의 의상 마련에 청와대 특수활동비(특활비)가 들어간 것이 아니냐며 공개를 요구했지만 청와대 측은 거부했고 결국 재판까지 갔다. 법원에서는 청와대에 특활비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청와대는 외교 안보의 이유로 판결에 불복했고, 김정숙 여사의 의상 마련에 특활비를 쓴 적이 없다고 밝혔다.
여러 종류의 옷과 보석류 중에서 단연 화제를 모았던 것은 표범을 형상화한 브로치였다.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의 2억대 제품이라는 주장과 싸구려 짝퉁이라는 주장이 맞섰다. 이른바 가품을 착용했다면 그것도 문제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까르띠에를 모방한 정체불명의 제품이라는 전문가의 분석도 나왔고, 결국 그 브로치를 실제로 만들었다는 제작자가 등장해 까르띠에와는 아무 상관없는 창작물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김정숙 여사의 브로치 논란을 보면서 필자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외국 정치인을 떠올렸다. 미국에서 외교관과 국무장관으로 활약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다. 그녀는 냉전체제 이후 혼란스러운 국제관계 속에서 미국의 외교를 지휘했던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브라이트는 소위 ‘브로치 외교’로 유명했다. 걸프전에서 패배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그녀를 독사라고 비난하자 유엔 회의에 뱀 브로치를 달고 나와 비난을 여유 있게 받아넘겼고, 김대중 정부 시절 우리나라에 왔을 때는 햇볕 정책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태양 브로치를 달았다. 그 외에도 여러 메시지를 브로치를 통해 전달했고 어느 순간부터 기자들은 그녀의 브로치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느라 애썼다. 정치나 외교가 메시지 싸움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남들은 갖지 못한 무기를 하나 더 갖고 싸운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김정숙 여사의 브로치가 고가의 명품이냐 저렴한 제품이냐를 가리는 문제보다, 그 자리에 어울리는 장신구였는지가 더 궁금했다. 문제의 브로치를 착용한 자리는 인도 영화 ‘당갈’을 인도 유학생들과 함께 관람하는 자리였다. ‘당갈’은 필자도 꽤 재미있게 봤는데, 여성인권이 열악한 인도에서 자매가 레슬링 선수로 성공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탁현민 비서관은 인도가 호랑이에 관심이 많은 나라여서 비슷한 동물의 브로치를 골랐다고 해명했는데 그런 의도였다면 다행이다. 물론 억지 변명이라며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누가 봐도 인도의 상징동물인 코끼리 브로치였다면 논란이 없었을까?
참고로 올브라이트 장관이 착용한 브로치들은 명품도 아니고 가품도 아닌, 개성 있는 저가 제품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꽤 체격이 당당한 것으로 많이들 알고 있는 올브라이트의 신장은 미국 역대 정치인들 중 가장 작은 수준으로 150센티도 안 된다고 한다. 필자도 어릴 때 그녀를 보며 브로치 가격이 엄청나겠구나, 미국사람이라서 그런지 체격이 크네,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아우라가 만든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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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브라이트 장관만큼은 아니더라도, 꼭 여성용 브로치가 아니더라도 은유와 상징을 담은 패션을 우리나라 정치에서도 보고 싶다. 국정감사장이나 시위에 등장하는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복장 말고. 패션의 힘을 보고 싶다.
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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