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위기로 심화된 '전쟁 난민 시대'…韓도 역할 할까
우크라이나 피란민 400만명 육박
시리아 난민의 약 3배…'난민 위기' 본격화
인접국뿐 아니라 국내에도 영향 미쳐
韓 '국제 난민 수용' 역량은 여전히 물음표
일부 시민들 반발 강하고 정부도 소극적
전문가 "국제 인권 이슈도 앞서 나가야"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미얀마 군부 쿠데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집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국제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권력, 국경 문제를 두고 분쟁이 심화하면서 전쟁 난민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전쟁, 테러, 빈곤을 피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난민들은 비단 인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또한 독자적인 난민법을 제정한 국가로서, 다가오는 '전쟁 난민 시대'에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제연합 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약 한달 동안 피난길에 오른 전쟁 난민 수는 약 400만명에 육박한다.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4300만명) 가운데 9% 이상의 인구가 전쟁의 포화를 피해 국경을 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은 지난 2011년 이후 10년 넘게 내전을 이어오고 있는 시리아 난민보다 약 3배 더 많은 수준이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조국을 떠난 피난민들은 우크라이나인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미얀마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 이후 수많은 시민, 민주주의 운동가,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정치적 망명을 택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탈레반이 정권을 접수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난민이 속출했다. 불과 2년 남짓한 시간 만에 전 세계 난민 수는 수백만명 이상 불어난 셈이다.
세계적인 지정학적 불안정성, 사회적·경제적 취약성, 영토나 권력을 두고 벌이는 갈등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바야흐로 '전쟁 난민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쟁 난민은 분쟁이 끝날 때까지 인접국으로 피신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400만명의 난민들 또한 대부분은 국경을 맞댄 동유럽 국가들로 향했다. 영국 국영매체 BBC에 따르면, 현재 폴란드가 233만명의 난민을 받았으며 또 다른 인접국인 슬로바키아 헝가리·로마니아·몰도바 등도 각각 40~60만명의 피란민을 수용했다.
유럽연합(EU) 국가들 또한 난민 수용을 위한 지원책을 논의하고 있으며, 영국은 자국 종교·자선단체의 후원을 받은 난민을 최대 20만명 조건 없이 수용하기로 했다. 미국 또한 10만명의 난민을 받기로 한 상태다.
그러나 난민이 반드시 인접국으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가까운 나라로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가족이 있는 먼 해외로 입국하는 사례도 있다. 즉, 먼 나라에서 벌어진 난민 위기가 반드시 한국과 무관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한국 또한 전쟁의 여파로 모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외국인을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탈레반 정권을 피해 국내로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378명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과거 한국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에 협조했던 이들로, 만일 탈레반이 접수한 아프가니스탄에 남아있었다면 생명에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었다. 정부는 지난해 이들의 공로와 헌신을 인정해 최장 5년의 체류 기간·제한 없는 취업 활동 등이 보장되는 'F-2' 체류자격을 부여했다.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보호는 국제법으로 지켜지고 있는 원칙이다. 앞서 지난 1951년, UNHCR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난민협약에 따르면 모든 난민은 ▲차별 없이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최소한의 처우 기준이 준수돼야 하고 ▲난민 추방은 국가안보 공공질서에 대한 위협 등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발생해야 한다.
난민협약이 체결됐던 195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파가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던 시대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극단적 빈곤, 분쟁 등을 피해 국경을 넘나들었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벌어진 6·25 전쟁 당시 한국인들도 이 협약으로 수혜를 입은 '전쟁 난민'들이었다.
한국은 지난 2012년, 난민협약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난민법을 제정했다. 1년 뒤인 2013년 6월에는 법무부에 난민과가 신설돼 난민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난민 위기가 벌어졌을 때,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인도적 책무를 다 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있다. 우선, 난민 수용을 두고 일부 시민들은 강력한 거부감을 보인다.
지난 2018년 제주특별자치도로 무비자 입국한 예멘 전쟁 난민 500명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예멘 내전을 피해 급히 제주도 땅을 밟은 뒤 난민 지위를 신청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서는 이들의 수용 여부를 두고 찬반 여론이 격화했다.
당시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 광장에는 '불법난민외국인 대책국민연대'가 난민 수용 반대 집회를 주최해, 주최 측 추산 약 1000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법적인 난민 지위를 악용하고 인도주의적 자원을 착복하는 자들을 추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라며 "난민법은 자국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난민법과 난민신청허가제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단 5일 만에 동의 20만건을 넘어서기도 했다.
정부 또한 난민 정책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UNHCR이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의 각국 난민 인정 현황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3%로 G20 소속 19개 국가 중 18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난민 인정률이 낮은 나라는 일본(0.3%)뿐이다.
이와 관련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지난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나라인 중 세계적으로 난민 수용을 거의 안 하는 나라"라며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앞으로 난민 보호와 같은 인권 이슈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측은 "한국은 2012년 아시아 최초로 유엔 난민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난민법을 제정했고, 2015년에는 재정착 난민제도도 도입해 난민을 직접 수용하고 있다"라며 "우리의 높아진 국제 위상, 경제 규모에 걸맞게 인권 보호나 국제 인도주의 이슈에서도 앞서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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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면서 난민 보호 및 인권위기 해결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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