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직원들 문화재 이송 혈투
문화재청·소방청·민간 울진 산불 확산 저지 구슬땀
초동대응 한층 강화…안전상황실은 인력 충원 절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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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명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지난 6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문화재청으로부터 울진 불영사에 있는 문화재를 급히 이송해 달라는 연락을 받아서다. 대형 산불이 남하한다고 예고돼 보물인 영산회상도와 불연, 경북유형문화재인 신중탱화가 위태로워졌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거리는 약 170㎞. 고속도로가 없어 서둘러 포장 도구를 챙기고 출발해야 했다.


3시간가량 운전한 끝에 도착한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북쪽에서 연신 화염이 솟아올라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소방대원들은 명승인 불영사 계곡 일원에서 살수 용수를 퍼 올려 공중을 선회하는 소방 헬기 대여섯 대에 매달았다. 일부는 불영사 삼층석탑 등을 누런색 방염포로 둘러싸 산불 피해에 대비했다. 심 연구사는 이들과 함께 문화재 이송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영산회상도와 신중탱화는 조선 후기 불화이고, 불연은 17세기에 제작된 불교 의례용 가마"라며 "하나같이 구조적으로 약하고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신중하게 옮겨야 했다"고 말했다.

"영산회상도는 한 변의 길이가 4m에 달한다. 천장 가까운 높이에 단단하게 고정돼 소방대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중성지로 겉을 감싸고 차에 싣기까지 1시간 정도 걸렸다. 불연도 조립된 부위가 느슨하고 금속이 부식돼 함부로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받침대 위에 올려 끈으로 묶은 뒤 중성지와 솜포(완충제)를 차례로 씌우기까지 2시간가량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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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문화재는 항온 항습 장치를 완비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서 머물다 24일 제자리로 돌아갔다. 불영사는 다행히도 산불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인근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울진 성류굴, 울진 행곡리 처진소나무, 울진 수산리 굴참나무와 보물인 울진 구산리 삼층석탑, 국가등록문화재인 울진 행곡교회 등도 무사했다. 전도욱 울진군청 문화관광과 문화재팀장은 "북면 두천리 외말래 바위산에 있는 심천범 효자비의 밑동이 약간 그을렸을 뿐 또 다른 문화재 피해는 없다"고 전했다.

문화재청과 소방당국, 민간이 철저하게 대비한 덕이다. 북쪽 36번 국도에 저지선을 구축하고 남하하는 산불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주충효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 사무관은 "불영사 주변에 바싹 마른 낙엽이 쌓여 있어 불이 붙으면 크게 번질 우려가 있었다"며 "경북북부문화재돌봄센터 직원 약 서른 명이 낙엽을 치우고 소방대원들이 인근에서 살수 작업을 벌여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서민석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연구관은 "울진 원자력발전소가 위험에 처해 소방 인력이 빠져나간 상황에서 경북북부문화재돌봄센터 직원들이 끝까지 남아 저지선을 사수했다"며 "산불 초기에도 문화재청 안전상황실로 관련 정보를 실시간 전달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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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이번 산불을 계기로 사찰이나 문화재 주변에 이격 공간이나 완충지대를 조성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작정 나무를 베어버리면 또 다른 피해가 유발될 수 있다. 서 연구관은 "나무를 갉아 먹는 흰개미가 목조 건물이나 문화재로 넘어와 부식을 일으킨다"며 "내화 수종을 심거나 부처 간 협업을 강화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초동 대응은 한층 강화될 수 있다. 최근 문화재청과 소방청이 폐쇄회로(CC)TV 영상 연계 통합 관제 플랫폼을 구축해서다. 두 행정 기관이 문화재 재난 관련 영상을 즉각 공유해 대응하는 시스템이다. 서 연구관은 "기존에는 119 신고가 들어오면 소방청에서 문화재 피해 상황이나 재난 발생 여부를 알려주는 데 20분 정도 걸렸다"며 "앞으로는 실시간으로 정보와 데이터를 공유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화재청도 전국 목조문화재에 설치한 CCTV 영상과 문화재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소방청, 산림청 등에 제공해 효과적인 대응을 유도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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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원활한 소통까지 기대하긴 어렵다. 문화재청 안전상황실 안전관리 업무 인력이 두 명에 불과한 까닭이다. 최소 3교대로 운영되는 소방청 등과 대조돼 운영 초기부터 실시간 대응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았다. 실제로 지난 5년간 자연재해로 훼손된 문화재는 300건에 육박한다. 원인은 산불, 지진, 호우, 태풍, 동물 등으로 다양하다. 한번 훼손되면 복원이 힘든 만큼 동시다발적 재난까지 고려한 대응 체계가 절실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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