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서울 서초동 대법원.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공무원이 상대방에게 제공한 이익에 상응하는 대가를 현금으로 받았더라도 직무관련성이 있다면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전 초등학교 교장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고,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전기공사 업체 이사 B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고 50만원 추징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채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뇌물죄의 직무관련성, 대가성 및 영득의사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상고 기각의 이유를 밝혔다.


경북 울릉군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A씨는 2019년 2월 18일 학교 전기공사를 맡은 업체의 이사 B씨로부터 공사의 진행, 준공 관련 각종 편의 제공에 대한 대가로 현금 50만원이 든 봉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A씨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가 소속된 업체는 2019년 1월 7일 학교 본관동, 유치원동 노후 전기시설 보수공사에 착수해 2019년 2월 28일 준공을 앞두고 있었다.


재판에서 B씨는 자신이 A씨에게 준 돈은 뇌물이 아니라 그동안 A씨가 제공해 준 여러 선물들과 편의에 대한 의례적인 답례라고 주장했다.


B씨는 ▲A씨가 공사담당자들이 울릉도에 들어온 첫날 직접 초대해 시가 20만원 상당의 점심식사(복지리)를 대접했고 ▲공사기간 동안 숙소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도록 펜션을 소개해줘 약 35만원 정도를 절감하게 했고 ▲수시로 숙소를 찾아와 과일 등을 대접하고 공사 현장에서 과자나 음료수 등을 제공했고 ▲학교 행정실 당직자가 공사업체 관계자를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하는 등 여러 배려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B씨는 이 같은 배려에 답례를 하지 못한 채 공사를 마치고 섬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또 다시 A씨가 자신이 채취한 해삼을 선물로 준비해 배웅하러 나온 것을 보고 마침 아르바이트생 자격으로 공사에 참여한 자신의 조카들에게 용돈을 주려고 출금해둔 돈을 A씨에게 건넨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자신이 받은 선물들과 편의에 대한 감사 차원에서 준 것일 뿐 어떤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 있는 뇌물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A씨와 B씨에게 뇌물죄 유죄를 인정, 각각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뇌물을 받은 A씨에게는 자격정지형의 선고를 유예하기도 했다. 또 사건이 불거진 이후 돈을 반환받은 B씨에게 뇌물로 제공됐던 50만원의 추징을 명했다.


재판부는 B씨가 A씨에게 준 돈을 단순한 의례상의 대가에 불과하거나 교분상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취지의 피고인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A씨는 2019년 1월 14일 공사금액을 4350만원으로 정해 체결된 이 사건 노후전기시설 보수공사계약의 감독, 준공검사 등 제반 업무에 관한 학교 내 최종결정권자로서 시공업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며 "B씨는 이 사건 공사와 관련해 행정실장 C씨가 공사감독 등을 담당했고, A씨는 이와 무관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학교장에게 소속 교직원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이 있음에 비춰, 적어도 교장인 A씨가 C씨에게 간접적이나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전제했다.


또 재판부는 "이 사건 금품은 현금 50만원에 이르러 그 종류와 가액을 감안할 때 이를 의례상의 대가에 불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자신이 제공받은 선물과 편의에 감사하는 차원에서 준 것이라는 B씨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공무원이 제공한 이익에 상응한다고 해서 해당 금전을 수수함이 곧바로 사회 관행으로 용인된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점 ▲B씨는 A씨의 이익 제공과 전혀 다른 방식인 금전 제공의 방법을 선택한 점 ▲A씨 등이 제공한 이익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 금품 액수는 지나치게 고액인 점 등을 고려하면 직무관련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이 사건 발생 시점 당시 준공검사, 공사대금 지급 등 절차가 종료되지 않아서 시공업체로서는 A씨로부터 직무상 편의제공을 기대할 수 있었다는 점에 비춰, 이 사건 금품수수는 사회일반으로부터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될 여지가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2019년 2월 18일 돈이 건네졌는데, 준공일이 같은 해 2월 28일, 공사대금 지출승인일이 3월 8일이었던 만큼 B씨의 입장에서 차질 없는 공사대금 결제 등 아직 A씨의 도움이 필요했던 상황이라는 의미다.


이어 재판부는 "이는 비록 A씨가 금품 제공을 요구하지 않았고, 이 사건 공사 진행 과정에서 이 사건 시공업체 관련 청탁이나 편의제공이 없었으며, A씨가 평소 교직원 등 주변 사람들에게 비슷한 배려를 해왔다는 등 사정이 인정된다고 해서 달리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A씨와 B씨 두 사람은 사실오인과 법리오해 및 양형부당을 이유로, 검사는 양형부당(형이 너무 가볍다)을 이유로 각각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은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AD

대법원 역시 이 같은 하급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