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새로운 우상의 형태가 나타났다. 인플루언서 중에서도 화려한 것들을 자랑하는, 이른바 플렉스로 인기를 모으는 사람들은 흠모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다. ‘오징어 게임’과 ‘지옥’에 이어 넷플릭스를 점령했던 우리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한 미국드라마 ‘애나 만들기’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애나 이야기’는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실제 사건을 드라마로 만들었다. 실존 인물인 애나 소로킨은 2013년 뉴욕사교계에 등장했다. 독일의 부유한 상속녀로 알려진 그녀는 유명 인사들과 어울리며 호화로운 일상을 SNS에 올리며 대중의 선망을 한 몸에 받았다. 맨해튼의 호텔에서 살면서 최고급 식당을 들락거리고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몸매를 가꾸고 휴가는 모로코로 떠났다. 예술재단을 설립하려고 거액의 대출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화려한 생활은 무려 4년 동안 이어졌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 다 거짓이었다. 그녀는 독일의 상속녀가 아닌 러시아 이민노동자의 딸이었다. 사회활동이라고는 대학을 중퇴하고 잠시 홍보회사 인턴생활을 한 것 뿐. 재판을 통해 드러난 그녀의 범죄행각은 너무 허술해서 더 충격적이었다. 첫 번째 거짓말이 성공했고 그 성공을 발판으로 두 번째 거짓말을 하고, 누군가를 속여 친해지고 그를 통해 또 다른 이와 친해지고, 그 관계들을 통해 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부린 허세를 미끼로 더 큰 돈을 빌리고......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그렇다. 역사상 이런 식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기꾼들은 늘 있었다. 다만 수많은 미디어와 SNS의 발달로 그 어느 시대보다 사기꾼들이 득세하기 좋은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유명하다는 이유로 유명하고 그 유명세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SNS와 개인방송에 넘쳐난다.
정치권도 비슷하다. 어제의 영웅이 오늘 몰락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어낸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맞서는 당당한 영웅, 부정부패에 거침없이 칼을 빼드는 청렴한 영웅, 춥고 낮은 곳에서 정의의 횃불을 지키는 약자의 영웅...... 저마다의 영웅을 기다리던 대중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정치인이 나타나면 열광한다. 그렇게 영웅이 된 정치인은 지지자들의 응원을 지렛대 삼아 더 영웅적인 면모를 과시한다. 그러나 역사상 진짜 영웅은 극히 드물고, 영웅 대접을 받았던 이들 대부분은 우리의 바람이나 시대정신이 투영된 허상일 뿐.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국민에 의해 뽑힌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손에 몰락했고, 국민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그녀를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는 온갖 추문에 엮여있다. 이번 대선후보들은 어떤가? 우리가 열광했던 1년 전, 2년 전 혹은 오래 전 모습과 그대로인가?
SNS나 유튜브의 사기꾼들은 사기행각이 들통 나면 철퇴를 맞는다. 대중에 의해 퇴출되기도 하고 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한 경우 처벌도 받는다. 그러나 정치권의 가짜 영웅들은 그렇지 않다. ‘빠’, ‘부대’, ‘콘크리트’ 등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는 핵심지지층들은 영웅의 치부와 거짓말이 드러나도 못 본 척 눈을 돌린다. 기묘한 사고의 흐름을 통해 철통같은 방어논리를 개발하고 공유하기도 한다. 문득 두려워진다. 혹시 나도 그런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영웅은 정치인이 아니라 야구선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들도 자문해보시길. 당신의 영웅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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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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