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최시흥 등 유격대원 130여명, 日경찰 사살, 주재소 습격
친일 부역하던 순사들 줄줄이 사직

[이상훈의 한국유사]일제의 눈엣가시, 천마산 유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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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은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6월에 봉오동 전투가, 10월에 청산리 전투가 발생했다. 독립군이 북간도(北間島)에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대규모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서간도(西間島)는 상대적으로 잠잠했다. 북간도와 인접한 두만강 일대는 일본군 제19사단 관할구역이었고, 서간도와 인접한 압록강 일대는 제20사단 관할구역이었다. 서간도가 잠잠했던 이유는 조선 국내에 있었다.


1920년 5월 6일, 평안북도지사는 조선총독부 경무총장(警務總長)에게 다급한 전보를 보냈다. 전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4월 21일 이래 창성·구성·후창·자성·강계 등 여러 군(郡)의 국유 산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후창 부근은 4월 25일 이래 여전히 산불이 이어지고, 의주와 구성의 군 경계에 있는 천마산(天摩山)에도 산불이 여전하다. 산불의 원인은 중국 복장을 한 조선인 10여 명이 후창과 강계 방면으로 들어와 방화했다는 의심이 있다. 혹은 불령선인(不逞鮮人)이 산림을 따라 방화하고 그 동요를 틈타 무언가 기도하려 한다는 정황 보고도 있다. 현재 당국은 산불 진화와 범인 검거에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정리하면 1920년 4월 압록강과 인접한 평안북도 북부 산림에서 산불이 대대적으로 발생하였는데, 방화자는 조선인으로 추정되며 그 기회를 엿보아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평안북도 산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평안도는 일찍부터 기독교가 보급되었고, 천도교의 교세도 확장되어 있었다. 1910년 당시 평안도는 각급학교가 844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특히 평안북도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만주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외 독립단체와 접촉이 빈번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신문화의 수용이 빨랐고 민족의식 또한 강할 수밖에 없었다. 평안북도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한 중심에는 천마산이 있다. 천마산을 중심으로 볼 때 서쪽으로 의주군, 남쪽으로 구성군, 동북쪽으로 삭주군이 위치해 있다. 이들 군의 경계가 바로 천마산이다. 해발 1,169m의 험준한 산악으로 울창한 수풀로 덮여 있다.

토벌대의 노영(1920년 6월 천마산에서)

토벌대의 노영(1920년 6월 천마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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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흥(崔時興)은 1919년 3·1운동 이후 천마산 일대에서 유격 활동을 주도했다. 최시흥은 3·1운동이 전개되자 의주군 고녕삭면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후 만주로 넘어갔다. 만주에서 수명의 동지를 규합해, 하얼빈으로 가 그곳의 노농병(勞農兵)에 가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해 12월 무렵 다시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진입해 천마산 유격대를 조직했다.


천마산 유격대는 이듬해인 1920년 3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3월 12일 선천군 대산면 사무소를 습격해 면장 김병준과 서기 김은기를 사살하고, 의주경찰서 형사 김명익의 집을 습격해 처단했다. 3월 24일 평안북도청 강구 수의(獸醫)를 사살했고, 4월 18일 자성군 치작고개에서 우편행랑을 습격해 탈취하기도 했다. 5월 7일 의주군 고관면 서하동의 친일분자를 처단했고, 5월 9일 철산군 여한면 사무소를 습격해 방화했다. 5월 18일 창성군 신창면 세덕동에서 헌병보조원 1명을 사살했다.


6월부터 전황은 더욱 치열해졌다. 6월 4일 삭주군 구곡면 신안동 순사주재소를 습격해 순사 1명을 사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6월 6일 강계군 문옥면 사무소를 습격해 공금 700원을 탈취하고 공문서 등을 소각했다. 6월 8일 벽동군 송서면 사무소를 습격해 공금 700원을 탈취하고 순사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6월 10일 창성군 대창면 면장 강창헌을 처단했다. 6월 25일 벽동군 학회면 순사주재소를 습격해 일본경찰 1명을 사살하고 건물을 방화했다. 또 강계군 외귀면 사무소를 습격해 공문서를 소각하고 건물에 방화했다. 6월 30일 정주군 문옥면 사무소를 습격해 현금 25원을 탈취했다.


일제의 조선헌병대사령부는 1920년 1월 1일부터 9월 1일까지 피해 상황을 발표했다. 발표문에는 평안북도에서 독립군에게 살해된 자는 29명, 부상은 23명이며, 행방불명자가 많다고 되어 있다. 또 독립군에게 습격받아 파괴된 공공기관은 경찰관 주재소 2개소, 면사무소 8개소라 되어 있다. 이들 피해의 대부분은 천마산 유격대가 관여한 것이다. 1920년 3~7월 사이 평안북도 일대의 관공리와 친일분자는 경찰 보호없이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면장들이 집단 사표를 제출해 선천, 용천, 의주, 구성 등지는 일시적으로 행정이 마비되기도 했다. 특히 친일부역하던 조선인 순사들의 사직이 속출했다.


‘독립신문’에 따르면, 1920년 6월 16일 단행한 군제 개편시 천마산 유격대원은 130여 명이었다. 사령장 최시흥, 부관, 최지풍, 참모 박응백·박영찬·최윤희, 경리 김세진, 중대장 최의집, 소대장 김상옥·김용석이다. 그런데 ‘동아일보’에 따르면, 1920년 7월 16일 유격대원 김효준이 일제에 체포되어 자백한 유격대원수는 47명이다. 대대장 최시흥, 대대부특무조장 김창하·김옥선, 제1소대장 허기호(부속 정교 1명, 부교 1명, 참교 1명, 병졸 12명), 제2소대장 최지풍(부속 정교 1명, 부교 1명, 참교1명, 병졸 9명), 제3소대장 김덕명(부속 정교 1명, 부교 1명, 참교 1명, 병졸 11명)이다.


토벌대의 빙상 도섭(1921년 3월 수구진 부근)

토벌대의 빙상 도섭(1921년 3월 수구진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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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개월 사이 병력수와 조직 구성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 6월에 천마산 유격대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6월은 바로 북간도에서 봉오동 전투가 발생한 시점과 일치한다. 천마산 유격대의 활동이 격렬해지자, 일제는 천마산 일대에 수색대를 증강 배치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공격을 감행했다. 1920년 3월 일본 군경 100여 명이 천마산을 포위·공격했고, 6월에는 수백명이 두룡산(頭龍山)을 습격했으며, 7월에도 100여 명이 천마산을 공격했다. 특히 일제의 6월 대공세로 인해 천마산 유격대는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고 천마산 유격대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일제의 대대적 공격 이후에도 여전히 명맥을 이어나갔다. 10월 22일 구성면 상단동에서 구성경찰서 수색대와 전투를 벌였고, 12월 28일 의주군 고녕삭면 차유령에서 일본 경찰과 교전하기도 했다. 1921년 1월 7일 고녕삭면 주재소 수색대와 전투를 벌였고, 2월 7일 천마산에서 다시 전투를 벌였으며, 9월 15일 북진경찰서 순사들과 교전했다. 1922년에도 산발적인 전투가 이어졌고, 1923년 2월까지도 교전이 있었다.


하지만 1922년 겨울 최시흥이 체포되고, 1923년 말 유격대원들이 대거 체포됨에 따라 국내 활동은 거의 종식된다. 1922년 겨울 최시흥은 군자금 4천원을 가지고 만주로 건너간 상태였다. 당시 일제는 최시흥을 체포하기 위해 현상금 5천원을 내걸었다. 최시흥은 봉천성(奉天省) 임강현(臨江縣)에서 중국 관헌에게 체포되어, 중국측 봉천 감옥에 수감되었다. 일제는 그의 신병을 인도받기 위해 수차례 교섭을 시도했으나, 중국측이 응하지 않았다. 일제는 봉천성장(奉天省長)을 매수하는 한편, 최시흥을 독립군이 아니라 만주 발전에 노력한 선량한 양민이라 속였다. 결국 최시흥은 석방되었다. 일제는 최시흥이 석방되자마자 감옥 앞에서 바로 체포했다. 최시흥은 일제에 의해 봉천에 수감되어 있다가, 1924년 4월 21일 신의주경찰서로 이감되었다. 이후 제령 위반, 강도, 방화, 살인죄 명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1925년 3월 12일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일제는 최시흥의 조사문에서 그를 ‘독립군’이라 하지 않고 ‘강도범’이라고 표현했다. 1920년대 초반 천마산 유격대의 독립활동을 인정할 경우, 조선총독부의 국내 통제권이 마비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었다. 일제는 1920년 평안북도에서 조직적인 대규모 항일무장투쟁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창 ‘간도 출병’을 추진하던 일제 입장에서 조선 국내의 천마산 유격대는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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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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