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무심하게 펼쳐진 낯선 삶의 파편
도윤희 개인전 ‘베를린’
지천명에 떠난 낯선 도시 베를린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 표현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은유에 대해 시인 정끝별은 “현상과 본질, 직관과 개념, 감성과 정신의 종합은 물론 외부와 내부, 추상과 구체, 의미와 기호, 관념과 실재, 언어와 행동을 하나로 접목시키는 교차로”라고 정의했다. 지천명이 지났을 때 낯선 도시 베를린으로 향한 서양화가 도윤희(61)는 이방인으로 그곳에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화풍을 모색했다. 작가는 색에 물성을 부여하고 이를 실체에 대한 인식이라 명명한다. “추상은 환상이 아니에요. 환상, 몽상, 상상 같은 게 아니고 인식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진행 중인 도윤희 개인전 ‘베를린’(BERLIN)에서 만난 작가의 근작들은 색이 주는 강렬한 에너지를 물질로 형상화한 인상을 준다. 앞서 2015년 개인전 ‘Night Blossom’에서 손을 활용한 표현법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색과 선의 덩어리가 얇은 층을 이루되 그 질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점이 눈에 띈다.
낯선 삶의 파편과 구석, 가려진 뒷면을 작가는 화려한 색채로 캔버스에 펼쳐낸다. 베를린에 머물면서 다양한 음악연주와 댄스공연 등을 접하면서 느낀 리듬감은 물감을 통해 탄력적이면서도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물성으로 표현됐다.
형형색색의 꽃다발, 해 질 녘 강변의 쓸쓸한 잔상은 흡사 인상주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지만 작품을 응시하는 동안엔 작가가 주목한 현상의 배후 속 숨겨진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사유가 내려앉는다. 베를린만의 퇴폐적 분위기와 기괴한 무거움이 자신을 이끌었다는 작가는 결국 베를린을 전략적 은신처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베를린에 대해 “인생, 생각, 감각 그런 모든 것들, 삶, 정신의 여정을 기호화 한 단어”라고 말했다.
시적 제목이 붙었던 종전 작품들과 달리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 40여 점의 제목은 모두 ‘Untitled(무제)’이다. 빛을 머금은 추상 색채 실험에 관객의 상상과 이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제목도 비운 것이다. 그런 의도처럼 화려한 색의 질감 속 구멍을 뚫어 빈 공간을 강조한 작품도 있다. 붓 대신 손으로, 유리병과 망치 등 다양한 도구로 표현한 색의 덩어리들은 조각적 영역까지 확장돼 새로운 추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얇고 반짝이는 표면과 두껍고 탁한 층, 둔탁한 덩어리와 민첩한 선, 밝음과 어두움, 강렬한 색과 은은한 기운, 커다란 동작과 미세한 움직임까지 작가는 새로운 연작을 통해 상반되는 수많은 요소들이 감각적인 충돌과 조화를 동시에 이루는 장면을 포착해 선사한다. 인상주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물결 같은 터치와 고대 동굴 벽화 같은 빠르게 물감을 움켜쥐다 펼친 손의 흔적은 자신이 일생 경험한 다양한 시공간을 반영한 추상적 풍경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작가의 색은 캔버스 위에서 물감을 만지고, 주무르고, 찍고, 쌓는 제스처를 통해 추상으로 육화됐다. 도윤희는 “실체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은유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추상”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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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갤러리현대에서 27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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