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 “유럽은 더 이상 ‘롤 모델’이 아니다”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오랜 세월 미국과 유럽은 세계의 ‘롤 모델’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면서 방역 당국은 허점을 드러냈고 큰 혼란에 휩싸였다. 방역 당국의 비일관적 조치, 비협조적 시민 태도, 인종 차별, 가짜 뉴스 등. 저자는 인권, 자유, 연대 등 유럽을 상징하는 가치들이 의미를 잃고 표류하는 현실을 조명한다. 또한 유럽의 정치, 교육, 의료 시스템의 명과 암을 들춰낸다. 아울러 유럽 사회의 불평등과 표현의 자유 등 각종 이슈와 논쟁 등을 살핀다.
분명 자유민주주의의 기수는 서구 세계다. 경제적 번영부터 소수자 인권까지, 그들이 먼저 이루었고 우리가 따른 것이 맞다. 문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거의 따라잡거나 이미 판세가 바뀐 영역이 있는데도, 그들에겐 관련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코로나19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위기다. 새로운 대응 방식이 요구되는데도 유럽은 여전히 과거 자유민주주의의 선구자 역할을 할 때의 모습에 기대고 있다. 유럽에서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이후 소셜 미디어에는 ‘연대(solidarity)’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주로 발코니에서 정해진 시간에 의료진에게 박수를 보내거나, 촛불을 켜거나, 작은 콘서트를 여는 사진과 함께 쓰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연대를 말하면서 정부 조치를 위반하고 모임을 열었다. 그동안 내가 연대라는 개념을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10쪽>
미국이나 유럽에 사는 한국인들이 그 나라 교육에 대해 쓴 걸 보면, 대개 한국이 주입식·암기식 교육인 데 비해 선진국은 구구단 하나도 몇 년 동안 가르치면서 원리를 완벽히 이해시킨다는 설명이 흔히 등장한다. 그런데 구구단 원리를 이해하는 데 정말 몇 년씩 걸리는 게 사실이라면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닌가. 만 9살짜리가 더하기와 곱하기의 관계를 이해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막상 내 아이가 3학년에 올라가면서 곱하기를 배우는 걸 보니, 선진국식의 대단한 ‘원리’ 교육이란 건 없었다. ‘무식한 반복’으로 구구단을 암기하는 건 스위스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엔 구구단 노래가 있고 여긴 없다는 것뿐이다. <116쪽>
IT 기술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일상에서 어느 정도의 사생활 침해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필요악이다. 팬데믹이 전 지구를 휩쓰는 상황에서 개인의 감염 이력이나 동선을 일부 공개하는 건 피치 못할 결정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개인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그것이 처리되는 과정을 주시해야 한다. ‘숨길 게 없다면 공개해도 된다’는 주장과 ‘사생활 침해에도 불구하고 이점이 훨씬 크기 때문에 희생을 감수하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다르다. 사안별로 이점과 희생의 크기를 비교해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프라이버시가 인간의 존엄성과 맞닿아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당장 피 흘리고 쓰러지는 사람이 없다고 그 무게를 폄하해선 안 된다.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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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지음/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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