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책임공방 속 中·러 안보위협 직면
EU는 2015년 '난민위기' 재연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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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 탈레반이 파죽지세로 아프간 정부를 무너뜨리고 수도 카불을 점령하면서 인접국들은 물론 열강들도 향후 아프간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 정파인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아프간은 물론 중앙아시아 전체 정세가 크게 흔들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역 내 열강들의 세력 재편도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탈레반은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했으며,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에 공식 항복을 선언했다. 정부 수반인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 대변인인 모하마드 나임은 알자지라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은 끝났으며, 탈레반은 평화적인 국제관계를 원한다"며 "곧 아프간 새 정부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로서 탈레반은 지난 6일 아프간 주요 대도시의 공격을 시작한 지 불과 10일 만에 수도 카불까지 점령, 20년 만에 아프간의 지배세력으로 재집권했다. 예상보다 빠른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에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아프간 정세를 좌우했던 열강들도 크게 긴장하고 있다.

◇美 책임공방 시작, "스테로이드 맞은 사이공"
[글로벌포커스] 탈레반 재집권에 요동치는 중동…美·中·러 모두 긴장 원본보기 아이콘


미국 내 정치권은 물론 주요 언론들은 앞다퉈 카불의 함락을 미국의 크나큰 ‘수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테로이드를 맞은 사이공"이라며 1975년 남베트남 패망에 빗대 카불 함락을 맹비난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의 완전 철수가 아직 2주나 남은 상황에서 미군이 수비 중이던 카불의 함락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오판으로 발생했다는 비판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도 전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정부군이 국가를 방어하기 역부족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일어났다"며 오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미 정계에서는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미처 마무리 짓기도 전에 아프간이 완전히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면서 정권 이양은 물론 새로운 아프간 정부와의 관계 정립도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아프간 정부수반인 가니 대통령이 아무런 정권 이양 계획도 없이 도주하면서 미국은 더 이상 탈레반과의 협상에 개입할 동기나 여지가 사라져버렸다"고 지적했다.

◇中·러는 자국 안보위협에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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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 중인 국가는 중국으로 알려졌다.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인 탈레반의 재집권 자체가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움직임을 고취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장위구르 지역에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 등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들이 활동 중이며, 이들은 과거부터 국경으로 연결된 탈레반에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정부는 일단 탈레반의 재집권을 인정하고 환영하는 제스처를 보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아프간 정세에 발생한 중대한 변화에 대한 아프간 인민의 염원과 선택을 존중한다"며 "탈레반이 전쟁이 이미 끝났으며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슬람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대화하며 아프간에 있는 외국 사절단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밝힌 것에 주목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달 14일 파키스탄에서 중국인 9명이 사망한 버스폭발 테러사건의 배후가 탈레반으로 추정되면서 중국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버스테러가 발생한 파키스탄에서는 2016년부터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일환인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이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중국 노동자들과 현지민들 간 충돌이 잦아지면서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 4월에도 중국 대사를 목표로 한 차량폭발 테러도 발생한 바 있다. 중국정부는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파키스탄과 중앙아시아 일대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조직들이 봉기해 일대일로 프로젝트 전체에 큰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도 탈레반의 집권이 아프간에 인접한 옛 소련계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안보에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옛 소련 연방 국가였던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아프간 국경 인근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였다. 이와 함께 9일부터 13일까지는 중국 서부 닝샤후이족자치구 일대에서 중국군과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가졌다.


이는 아프간 인접국들과 함께 탈레반의 세력 확대와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들의 봉기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으로 알려졌다. BBC에 따르면 특히 러시아는 과거 1991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봉기했던 러시아 연방 내 체첸 자치공화국의 이슬람 반군들이 다시 활동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EU, 난민 위기 재연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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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내부에서는 이번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으로 발생한 난민들이 대거 유럽으로 향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에서는 이미 수십만 명이 피난길에 오른 가운데 카불 함락 이후 난민이 수백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난민 위기가 재연된다면 EU의 결속력이 다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EU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해 "EU 내부에서는 당장 이민 위기가 발생하진 않을 것으로 보지만, 앞으로 몇 개월 내로 대규모 난민행렬이 유럽으로 향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U 내에서는 아프간 난민 수용문제를 두고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그리스 등 6개 회원국은 지난 10일 EU집행위원회에 망명신청이 거부된 아프간 난민의 추방을 중단치 말 것을 요구했다.


이들 국가들은 2015~2016년 중동 난민 100만여명이 유럽으로 밀려왔던 이른바 ‘난민 위기’가 재개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EU에서는 올 들어 아프간에서 난민이 40만명 이상 발생했으며 이들이 중동국가들을 거쳐 유럽으로 대거 몰려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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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내 주요 국가들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오는 18일 각료회의를 열고 아프간 난민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메르켈 총리는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웃 국가들을 지원할 계획"이라며 "유엔난민기구(UNHCR)와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아프간 사태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하기로 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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