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 자기기만이 몰고 온 '긍정의 힘'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2020 도쿄올림픽에서 아깝게 메달은 놓쳤지만 육상 높이뛰기 한국 신기록을 경신한 우상혁 선수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진행자가 "경기를 치르기 전부터 새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느냐"고 묻자 "비밀스러운 비밀이었다. 코치님하고 저하고는 확신이 있었고 올림픽만 나가자는, 문턱만 넘어선다면 올림픽에서는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답했다. 도쿄올림픽 전까지 우리나라 높이뛰기는 애틀란타 올림픽(1996년) 이후 결선에 진출한 적이 없기에 우 선수의 확신은 어쩌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번 올림픽에서 코치진으로부터 메달을 딸 수 있을 거란 말을 들은 선수가 비단 우 선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포츠 세계에서 코치들은 선수가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수많은 거짓말을 한다. 어떤 환상들은 분명 더 나은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착각의 자유’가 아닌 ‘착각의 쓸모’란 제목처럼 착각이란 자기기만이 일각 긍정의 효과가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저자 샹커 베단텀과 빌 메슬러는 야만적인 진실보다 때로는 자애로운 기만, 긍정적인 자기기만이 생을 살아갈 때 효과적일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절망적인 진실보다 희망적인 거짓을 선택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임마누엘 칸트처럼 진실이 희망보다, 건강이나 행복한 삶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말한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객관적인 진실은 목표가 아닐 뿐만 아니라 목표에 이르는 길도 되지 못 한다.’ 저자는 이런 의문을 갖고 수년 전 옥스포드에서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에게 물었다. "종교적 주장들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은 뒤 사후에 관한 종교적 믿음 덕분에 인생이 견딜만해 진 사람에게 그 같은 확신이 주는 편안함을 빼앗아야 할까요?" 도킨스는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착각은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저자는 책에서 기본 디자인이 거의 같고 자재도 같은, 같은 공장에서 조립한 자동차라도 ‘도요타’ 브랜드가 붙자 판매량이 뛰거나 가격이 비싼 와인일수록 ‘맛이 좋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예를 든다. 이런 착각은 제품이 소구하는 이야기의 힘으로 풀이된다. 저자는 더 나아가 종교, 민족, 국가로 착각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만일 잘못된 믿음이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신화가 공동체를 번창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자기기만이 다른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 시키도록 촉진하고 그렇게 해서 공동체, 부족, 국가를 도울 수 있다면 허용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착각인 줄 알면서도 이를 거스르기 힘든 까닭을 저자는 영화 ‘트루먼 쇼’에서 찾는다. 트루먼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기만을 꿰뚫어 보려면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한다. 친구가 사실은 친구가 아니고, 자신의 직업이 진짜 직업이 아니며 아내가 진짜 아내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만 한다. 과연 그는 감당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자기기만과 착각을 비이성적이라거나 과학적이지 않다는 단순 해석을 경계한다. 오히려 처한 환경에 따른 당연한 반응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상황이 나쁜 쪽으로 변하거나 저자 말대로 인생을 버티는 기둥들이 휘고 흔들린다면 신을 구하지 않기란 더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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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의 쓸모/샹커 베단텀·빌 메슬러지음/이한이 옮김/반니/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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