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중소기업 적합업종 혁신을 지원해야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 이상 지났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용어가 말해주듯이 특정업종의 경우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산업 발전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는 도입 취지의 효과를 내고 있을까.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중소기업 혁신 지원이 아니라 대기업 퇴출 방법에 의해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근본 문제다.
2011년께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된 막걸리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막걸리는 오랫동안 소주나 맥주 등에 비해 품격이 낮은, 그야말로 서민들의 술로 인식돼왔다. 값도 싸 누구나 마실 수 있는 술로 여겨졌다. 2000년대 중반부터 막걸리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건강에 좋다는 평판이 생겼고 일본에선 막걸리 열풍이 생기는 등 해외 수출까지 확대된다.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던 것이다.
대기업은 세 가지에 주목했다. 첫째는 막걸리를 마신 후 머리가 아픈 문제다. 대기업은 연구개발을 통해 이 현상을 개선했다. 막걸리에 섞인 이물질에 의해 머리가 아프다는 것을 알아내고 이를 극복한 막걸리를 내놓은 것이다. 둘째는 빨리 상하는 문제다. 캔 막걸리를 내놓는 방법 등으로 해결해냈다. 막걸리를 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는 지역상품으로만 머물렀던 문제다. 이는 주로 빨리 상한 데 따른 것이었는데 보관 기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레 극복됐다. 유통 영역은 일본 등 해외로까지 확대됐다. 대기업의 기존 주류 해외 판매망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내에선 TV를 포함한 마케팅 활동이 강화되면서 막걸리 애호가가 많아지고 판매량은 급신장했다. 막걸리 출고량은 2007년 17만㎘ 수준에서 2011년엔 49만㎘로 불과 4년 만에 3배 정도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1년 막걸리 산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된다. 대기업에겐 퇴출 대신 확장금지 규제가 시행된다. 대기업 입장에선 매출 증대를 위한 혁신 노력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 캔 막걸리가 폭발하는 사건이 있었으나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개발은 중단됐다. 중소기업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개발은 할 수 없었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중소기업은 TV 광고 등 전 국민 대상 마케팅 활동도 하지 못했다. 대기업은 점차 사라지고 막걸리시장은 이전 지역시장으로 되돌아갔다. 2015년 출고량은 2011년 대비 약 10% 감소하고 수출은 2011년 4만3000t 수준에서 2018년엔 1만3000t 수준으로 급감했다.
문제는 시장이 작아지면서 중소기업의 매출액과 이익도 감소했다. 대기업의 참여로 잘 나가던 시장이 정부가 개입하면서 퇴보한 것이다. 이러한 퇴보는 막걸리뿐이 아니다. 제과, 외식, 두부, 김치, 중고차 거래 등 다양한 업종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들 업종에선 외국계 대비 국내 대기업 역차별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산업혁신은 시장참여자, 그것도 높은 혁신역량의 참여자가 많을수록 활발해지고 그 혁신 결과는 예상치 못했던 산업혁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높은 혁신역량의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시장에 남겨두는 결과를 반복하고 있다. 단기적으론 중소기업을 '약간 보호'하는 효과를 창출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혁신생태계를 파괴하면서 결국 중소기업도 어렵게 만든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폐지하지 않고 존속시켜야 한다면 대기업 퇴출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을 높여주는 방법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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