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가 백기완 별세, 한평생 통일·노동·농민·도시빈민 운동…두 차례 대선 출마, '임을 위한 행진곡' 원작자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전진영 기자] 통일운동가이자 시인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새벽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8세.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엄수된다.


백 소장은 폐렴 증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1933년 1월24일 황해도 은율군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4·19 혁명과 6·10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 굴곡진 현장을 온몸으로 경험한 진보 진영의 상징적 인물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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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부터 도시빈민운동과 반독재 투쟁, 노동운동에 이르기까지 진보운동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백 소장은 민중의 애국가로 불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자로도 유명하다. "사랑도 이름도 남김 없이…"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백 소장의 장편 시 ‘묏비나리’를 토대로 소설가 황석영이 작사한 노래다.

백 소장은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 위반 혐의로 장준하 선생과 함께 구속되는 등 평생을 옥고와 싸워야 했다. 오랜 투옥 생활과 고문 후유증 등으로 평소에도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그는 행동하는 사회운동가의 삶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집회 현장의 앞자리에는 하얀 도포 차림의 백발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가 바로 백 소장이다.


백 소장은 1987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대선에 도전했다. 1987년 대선 때는 군사독재 청산을 염원하는 학생, 노동자, 민중들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됐지만 ‘민주정권 쟁취’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후보 자리에서 내려왔다. 1992년 대선 때는 완주했다.


당시 백 소장은 전국에서 23만8648표(득표율 1%)를 얻으면서 5위를 기록했다. 백 소장 선거운동을 돕고자 전국 대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섰고 일부는 자취방 보증금을 빼서 선거자금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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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도 백 소장을 추모하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치열했던 삶은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진정한 진보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지금도 ‘어영차 지고 일어나는 대지의 싹’처럼 생명의 존엄,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일깨워주실 듯하다”고 논평했다.


강은미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선생께서 못 다 이룬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해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통일에 대한 애끓는 열정을 토로하셨던 선생님,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그림자를 좇아가기에도 벅찼던 분, 시대의 등불을 이렇게, 또 잃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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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도 페이스북에 "한평생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길 틔어주신 그 자리에 저희들 잘 걸어가겠다"라고 다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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