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지난해 입양된 뒤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받다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양에 온 사회가 애도와 분노의 물결이 거세다. 정인양 사건과 관련 정부는 지난 5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아동학대 대응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공적 책임 강화, 법 개정 추진, 사후점검 정례화, 아동학대 총괄 부서 신설 등 여덟 가지 대응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부는 아동이 1년에 2회 이상 학대로 신고되는 경우 아이를 부모 등과 즉시 분리한다는 방침이다. 현장에서는 이에 대해 현재의 시설과 인력으론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한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아동에 대한 쉼터와 상담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한 현실감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71개에서 81개로 10개 늘리고, 학대피해아동 쉼터도 10곳 늘린 86개로 증설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시설에 수용 가능 인원은 600여 명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로 판단되는 피해 아동은 3만45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11.4%인 약 3400여명이 재학대 사례인 걸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는 또 올해 안에 전국 모든 시군구에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총 664명을 배치하고, 전문성을 강화해 안정적인 아동학대 대응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약사, 위탁가정 부모 등 아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직군을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 추가해 아동학대 조기발견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역시 실무 숙련도가 높지 않은 경우 별 차이가 없다. 전문가들은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그에 걸맞은 전문성과 처우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즉 과감하고 안정적인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일반회계에서 4%에 불과하고,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범피기금)이나 복권기금 등으로 충당되는 상황이다.


얼마 전 7살 딸아이에게 "우리가 사는 집은 어떤 곳이지?"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딸아이는 아빠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 "그게 무슨 말이야"라며 "편안한 곳이지. 아빠ㆍ엄마와 밥먹고 놀고 자는 좋은 곳이야"라고 답했다. 나 역시 집을 떠올리면 유년시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 결혼 후 가정을 꾸렸던 집 등 가족안의 행복한 울타리가 떠오른다. 우리 삶에서 집은 안식처이자 보금자리다.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안락하고 쾌적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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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군가에게 집은 무서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공포의 공간일 수 있다. 적어도 정인양을 비롯해 여행용 가방에 갇혀 드라이기로 고문 당했던 9살 아이, 엄마의 반복적인 방치 속에 배가 고파 라면을 끓여먹으려다 화마를 당한 초등생 형제, 집에서 쇠사슬에 묶이고 물고문을 당하는가 하면 불에 달군 쇠젓가락으로 발도 고문 당한 9살 소녀 만큼은. 지금도 어느 집에서는 이 같은 일이 횡행할 지 모른다. 생각만해도 화가 치민다. 더 이상 소잃고 고친 외양간을 또 고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이광호 기자 k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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