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차분하고 신중한 아세안의 남중국해 외교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베트남의 주재 하에 이달 초순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개최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화상회의로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대로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싼 주요국들의 갈등이 첨예하게 부각되었다. 올 여름 남중국해 수역에 두 척의 미 항공모함이 배치되고, 중국이 중거리 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훈련을 하면서 역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데 대해 국내외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었다.
사실 남중국해 문제가 부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원의 보고로 알려진 남중국해에는 230억 배럴의 원유와 350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세계 어획량의 12%을 차지할 정도로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남중국해는 지정학적으로도 전략적 요충지이다. 세계 교역량과 원유의 30%가 통과하는 주요 교역로이며, 한중일 동북아시아 3개국이 수입하는 에너지의 90%도 이곳을 통과한다. 또 중국이 아프리카와 인도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남중국해를 지나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인해 아세안은 약 30년 전 부터 남중국해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 왔다. 1992년 아세안은 사상 최초로 ‘남중국해에 관한 선언’을 채택,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모든 관련 당사국들의 자제’를 촉구하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2년, 아세안은 중국과 ‘남중국해에서의 행동선언(DOC)’을 채택하였다. 동 선언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의 목적과 원칙 존중을 선언하고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을 강조하기는 하였으나, 구체적 행동규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오랫동안 남중국해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들이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한편, 2009년 미 해군 함정의 남중국해 무해통항 문제가 부각된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남중국해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1년 미국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가입 이후 최초로 동 회의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아태지역의 안보 보장자로서 남중국해 문제의 해결에 강력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또 2012년 필리핀과 중국 간에 발생한 남중국해내의 스카보로 암초(Scarborough Shoal) 사건과 관련, 이듬해 필리핀이 제반 법적 쟁점을 중재재판에 회부하고 2016년 필리핀이 승소하였지만, 남중국해 상황에 결정적인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지난 30년간 이처럼 남중국해 문제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특히 최근 들어서는 미중 간 대결의 장으로 변모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의 입장과 반응을 살펴보면 몇 가지 관통하는 흐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세안은 거의 매해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을 통해 남중국해 문제를 거론하면서 92년 최초 선언의 핵심 내용인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의 기초위에서 상당히 일관된 문안을 채택해 왔다. 2012년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아세안 외교장관회의가 역사상 유일하게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한 적도 있기는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회원국 간의 단합을 통해 차분한 대응 기조를 유지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아세안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강대국들의 입김이 점점 더 세지는 상황 하에서도 신중함을 잃지 않고 있다. 베트남의 팜빙밍 외교장관은 이달 초 외교장관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아세안 회원국들은 다른 나라들의 경쟁 사이에 끼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명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미중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해석되었다. 남중국해 문제와 강대국 간의 갈등에 대처하는 아세안 외교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차분함과 신중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아세안의 전략은 한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필자가 북경에 근무할 때 가깝게 지냈던 싱가포르 고위 외교관의 언급이 떠오른다. “싱가포르는 친미냐 친중의 선택이 아니라, 싱가포르의 국익을 기초로 친싱가포르의 선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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