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V 뚜껑 열어보니…회사채 중 A등급 85%
"기업들, 회사채 대신 저금리 대출 취사선택" 평가도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장세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초기 출렁였던 자금시장이 안정되고, 정부의 전방위적 조치가 더해지며 기업들의 자금사정에 어느 정도는 숨통이 트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논란 끝에 세워진 '저신용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SPV)'를 통한 지원도 예상보단 적었다. 다만 올 상반기 기업들은 대부분 대출로 코로나19 위기를 버텼고, 하반기에 대출 만기가 다가오는 곳들도 많아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세심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단 얘기가 나온다. 기업들에 뿌린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것 또한 과제로 꼽힌다.
12일 조해진 미래통합당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SPV는 총 16개 기업의 5820억 규모 회사채·CP를 매입했다. 매입한 회사채(2720억원) 중 A등급 회사채가 2320억원 상당으로 85%에 달한다. 이는 산업은행이 SPV 출범 전에 먼저 매입해 둔 회사채를 SPV가 넘겨받은 것이다. 이 외에는 400억원 규모의 2개 기업 BBB등급 회사채를 매입한 것이 전부다. CP는 총 3100억원을 사들였는데, 절반 가량이 A1 등급으로 비교적 우량한 CP였다.
7월 말까지 SPV가 매입한 회사채·CP 중 투기등급은 없었다. SPV 설립 당시 한은과 산은 등은 "코로나19 사태를 전후로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이른바 '추락천사(Fallen angel)'를 매입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시장이 진정된 후에 SPV가 세워져 매입할 대상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동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발권력을 동원해 시작한 전례 없는 정책인 만큼, 우량한 편인 회사채 매입으로 운용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SPV는 말 그대로 긴급유동성을 지원하는 것으로, 고객(회사)들은 시장에서 소화 가능한 부분에 대해선 직접 매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SPV가 채권안정펀드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A등급을 산 것"이라며 "발행시장에서 미매각 물량을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도 여전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자금상황이 좋아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일부 가능하지만, SPV의 매입금리 조건이 좋지 않아 기업이 대출을 받는 등 다른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택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저금리 기조 하에서 정부가 대출을 손쉽게 만들어뒀기 때문에 기업들이 자금을 취사선택해 조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상보다 적다고는 하지만) A등급 회사채를 시장에 판 기업은 어느정도 우량한 기업들"이라며 "시장에서 소화가 안 된다는 물량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여전히 기업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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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정부는 기업 등에 뿌린 돈이 생산적인 투자처로 유입되는 정책을 마련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판 뉴딜을 통해 투자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 것"이라며 "이외에도 벤처 투자 활성화, 신규 민자사업 발굴 등을 통해 자금을 건전한 곳으로 이끌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세희 기자 jangsa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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