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브리핑] “사랑한다고 답장을 해야 할까요” 차별금지법 항의전화 견디는 의원들
[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각오는 당연히 돼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답장을 해야 할까요.” 지난달 25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스마트폰에는 실시간으로 항의 문자가 왔다. 잠시 이야기를 하느라 장 의원이 스마트폰을 보지 못한 순간에도 새로운 문자 알림들이 날아와 화면을 채웠다. 장 의원은 21대 국회 차별금지법의 대표 발의자다.
장 의원뿐만이 아니다. 차별금지법 발의에 동참했던 21대 국회의원들은 “네 자식도 그랬으면 좋겠느냐”는 항의전화를 계속 받고 있다. 그러나 법안 발의자들은 이를 묵묵히 견디는 중이다. 모든 차별에 맞서자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다.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은 당시 29일로 예정되어 있었고, 아직 장 의원이 다른 의원들에게 친전을 돌리는 단계였지만 벌써부터 의원실 항의를 유도하는 글이 인터넷에서 돌고 있다고 했다. 보수 기독교 단체와 SNS 등을 통해 퍼진 해당 글에는 장 의원뿐만 아니라 발의에 함께한 정의당 의원 모두의 개인 번호가 적혀있었다. 의원실에도 전화가 빗발쳐 보좌진들은 어느 순간부터 업무가 아니라 항의전화를 받는 것이 일이 됐다.
전화 유형도 다양하다. 의원 이름도 모르는 채로 일단 전화부터 해 욕설을 하거나, 조곤조곤 장시간 법안 철회를 설득하거나, “당신 자식이 그런다고 생각하면 좋겠느냐”며 감정을 대입해보라는 식이다.
법안을 공동 발의한 다른 의원실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법안 발의에 함께한 권인숙 의원실은 “내가 민주당원인데, 발의를 철회하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식의 전화를 받는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도 공격의 대상이 됐다. 김준호 기본소득당 대변인은 “보좌진이 출근하기 전부터 의원실에 전화가 오고 있다”며 “1시간 만에 전화 17통을 받은 적도 있다. 보좌진 번호로도 계속 전화가 와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좌진들도 전화를 무시하거나 끊기보다는 “의원님께 잘 전달하겠다”며 가능한 응대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용 의원실은 1일 페이스북에 “항의 전화가 너무 많이 오고 있으니 의원 메일로 질문을 해달라. 읽고 답변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권 의원실 관계자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비판과 의원이 애초에 평생을 투신해 온 운동의 취지가 다르지 않느냐”며 “차별에 반대한다는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차별금지법의 입법 추진을 권고했다. 이후 14년 동안 법안은 국회에서 여섯 차례 발의됐지만 반대 여론으로 번번이 좌절됐다. 여섯 개의 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되거나, 발의자의 철회 의사로 효력을 잃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상장 첫날 70% 폭등 "엔비디아 독주 끝나나"…AI ...
지난달 29일 새 법안이 발의되고 인권위도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2일 국회를 찾아 박병석 의장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를 예방하고 힘을 써줄 것을 당부했다. 여전히 빗발치는 항의 속에서, 일곱 번째 차별금지법은 과연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