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날엔…] 통일부, 참여정부 때 위상은…대선주자 입각희망 '0순위' 부처
정동영·김근태, 2004년 6·30 개각 통해 장관 입성…'오매불망 통일부', 관심 증폭시킨 입각 경쟁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청와대의 주인공이 되려는 정치인들은 이른바 ‘정치 스토리’를 잘 짜야한다. 국민이 감동할 포인트도 넣어야 하고, 명함에 당당히 넣을 직함도 중요하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국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입각은 유력 정치인들의 희망사항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검찰개혁이 시대의 화두로 등장하면 법무부 장관이 금값이 될 수밖에 없고, 다른 현안이 있다면 그 현안의 주무 부처 장관이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다.
참여정부 때는 통일부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참여정부 시절 차기 대통령을 꿈꿨던 유력 정치인들이 통일부 장관 자리를 놓고 ‘오매불망’ 구애 경쟁을 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이자 참여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이다. 정 부의장의 남북 관계 전문성을 두 명의 대통령이 모두 인정한 셈이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004년 6월 새로운 통일부 장관을 뽑게 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여당(열린우리당)에서는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통일부 장관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 차기 대선후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밟을 것이란 관측까지 나올 정도였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유력 대선 주자들은 자존심을 걸고 통일부 장관 자리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 주인공은 ‘정치인 정동영’ 그리고 ‘정치인 김근태’이다. 참여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남북 관계 사업은 통일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
통일부 장관이 되면 자연스럽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게 되고 사업 성과까지 낼 경우 정치적인 위상은 더 올라갈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 관계 개선에 관심이 지대한만큼 통일부의 정치적인 위상도 컸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정동영 의원과 김근태 의원은 모두 통일부 장관 자리를 희망했다. 재야 출신 정치인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김근태 의원은 한반도 평화와 인권 증진이 자신의 정치 철학이자 소명이었다.
통일부 장관 자리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GT계(김근태계)’로 분류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원내대표)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모두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 문제에 관심이 지대한 인물이다. 정치적 스승이자 평생의 동지인 김근태 의원의 영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동영 의원에게도 통일부 장관은 물러설 수 없는 자리이다. 정동영 의원 쪽에서는 통일부 장관으로서 남북관계 개선에 성과를 내고 여세를 몰아서 2007년 대선에 도전하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실제로 정동영 의원은 2007년 대선 도전 당시 ‘평화 대통령’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했다. 지금도 정치인 정동영의 최대 치적을 꼽으라면 개성공단 사업이 거론된다.
통일부 장관 자리를 놓고 정동영 의원 쪽과 김근태 의원 쪽이 신경전을 벌이면서 정치권 안팎의 지적을 받을 정도로 당시 관심은 뜨거웠다. 결국 2004년 6·30 개각에서 통일부는 정동영 의원, 보건복지부는 김근태 의원이 맡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실 복지도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만큼이나 힘을 실었던 영역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동영·김근태 두 명의 여당 의원을 합류시켜서 ‘2기 내각’을 꾸린 것은 대권 수업의 기회 제공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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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통일부 자리를 둘러싼 물밑 신경전은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의도 정가의 화제가 될 정도이다. 당시에는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참여정부 당시 통일부의 위상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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