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별대담]진념 "성장률 0.1%에 연연 말고 경제체질 강화에 집중해야"
위환위기 극복 진두지휘 한 진념 前경제부총리
세계경제 호황 속 IMF 위기
극복만 하면 성장 가능했던 상황
지금은 세계적 위기, 카오스 상태
감염병 뒤 경제질서 완전히 바뀔 것
정부, 디지털뉴딜도 깊이 간섭 말고
환경 조성·'치어리더' 역할만 해야
어려운 때 일수록 재정역할 강조
국가채무 비율 높아져도 이익내는 방향이면 성공한 투자
소모적인 곳에 쓰는 것이 문제
최근 화두인 기업 리쇼어링, 지원금 보단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더 절실
나머지는 기업에 맡겨야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겪고 있다. 한 번도 겪지 못한 위기 사태에 한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감염병 위기 극복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는 전 세계적인 어젠다가 됐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예상할 수 없고, 경제 회복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저력이 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당시로서 미증유였던 이 위기극복 과정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지난 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나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어봤다.
-IMF 외환위기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는데 현재의 코로나19발 위기와 앞선 위기는 어떻게 다른가.
▲외환위기 때나 2008년 금융위기는 일종의 유동성 위기로 볼 수 있다. 외환위기는 6ㆍ25전쟁 이후 우리 경제의 최대 난제였다. 1998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5% 이상 떨어졌고, 실업자도 200만명 이상 나왔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부도가 나고 대기업의 절반 정도는 정부 지원을 받게 됐다. 다만 지금과 다른 것은 당시 세계경제는 전반적으로 상황이 좋았다는 것이다. 우리만 잘 극복하면 성장세를 타서 'V자형' 성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적 위기, 카오스(대혼돈) 상태다. 범세계적으로 실물경제에서 소비가 줄고 투자가 안 되고 있다. 더 중요한 건 국제 금융위기 때만 해도 국제 간, 경제 리더 간의 국제공조가 작동할 때지만 지금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국제공조도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는 점이다.
-IMF 위기 당시 어떤 경제정책 추진했나.
▲외환위기를 극복할 때도 참 어려웠지만 5년 동안 IMF 구제금융을 받은 195억달러를 당초 계획보다 먼저 조기 상환했고, 경제는 V자 회복을 했다. 구제금융 자금 가운데 금융과 기업부실을 해소하는 데 170조원을 썼다. 이때 '다음 정부에는 흑자기조를 넘겨주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금융구조개혁과 4대 보험개혁, 또 지식정보화시대에 대응해 새로운 성장동력인 벤처산업을 육성하자고 했다. 당시에는 이 정책들이 '돈 빼먹는 하수구'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기업들이 지금은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 IMF 극복 과정에서 복지문제도 다뤄보자고 했다. 기초생활보장법도 이때(1999년) 도입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하는 의료보험체계통합도 그때 했다. 이는 '생산적 복지'를 전제로 복지정책을 썼기에 가능했다. 일하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면 일자리 복지도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은 어떻게?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 질서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우리의 과제다. 다행스러운 것은 코로나19 대응ㆍ수습 과정에서 우리가 모범국가로 인정받으면서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 자부심을 우리 경제의 내성을 키우는 데 활용해야 한다. 어떻게든 체질 강화에 역점을 둬야 한다. 당장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하느냐가 중요하지만 중기적으로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한 다양한 정책 시도가 필요하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 체질이 악화되고 위기에 대한 내성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복원시키고 살리는 쪽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념과 진영을 넘어서 다같이 고민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 위기는 '담대한 도전'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키우기 위한 방법은?
▲일자리 문제를 보자. 지금은 지식산업화, 인공지능(AI)의 시대다. 이런 분야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야 한다. 미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스라엘처럼 군복무 기간을 활용해 청년들에게 기술을 교육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군대에서 ICT 전문기술과 지식을 가르쳐 기술 창업을 돕고 있다. 우리도 군 복무기간 가운데 6개월~1년 정도 집중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한다.
▲우리는 뉴딜하면 테네시강 개발 등 대대적인 토목공사만 생각한다. 그게 다가 아니다. 미국은 뉴딜을 통해 복지를 바꾸는 등 시스템을 개혁했다. 디지털뉴딜, 그린뉴딜 내용은 좋은데 추상적이다. 특히 그린뉴딜하면서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수소ㆍ재생에너지 기반을 육성한다고 하는데 알맹이가 빠졌다. 정부가 원자력발전을 줄이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대체한다고 하는데 LNG는 공짜가 아니다. 석유파동, 석유위기가 다시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 정부가 탈원전한다며 에너지산업이 다 죽었다. 있는 일자리마저 사라졌다. 기본적으로 탈원전이란 용어를 버리고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 미국의 중국ㆍ러시아 견제 전략에 맞춰 한국과 미국이 함께 세계 원전 발전시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신한울 3, 4호기를 예정대로 건설해야 한다. 디지털뉴딜도 정부가 직접 뛰거나 간섭하면 안 된다. 정부는 어디까지나 플레이어가 제대로 뛸 수 있도록 장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정부는 직접 일자리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치어리더의 역할만 하면 된다.
-최근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많다.
▲예전에 예산실에서 같이 일하던 직원들을 최근 만났는데 "요새 같으면 우리가 왜 그렇게 욕먹으면서 재정건전성을 지켰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을 하더라. 재정을 건전하게 운용해야만 위기 때 쓸 수 있다.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하면 올해만 추경으로 약 60조원을 쓰는 거다.
어려울 때일수록, 미증유의 위기를 맞이해서 재정의 역할은 강조돼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쓰느냐다. 한국 경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재정을 투입해서 성장률 0.1%, 0,2% 올리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체력 보강에 집중해야 한다. 국가채무 비율이 높아지더라도 전체적인 경제 사회에 성장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면 걱정을 덜 해도 된다. 이 투자를 위해 생긴 부채지만 이 투자가 발전하면 원금과 이자 갚고도 이익을 낼 수 있으면 이는 성공한 투자다. 소모적인 데 쓰는 것이 문제다. 3차 추경까지만 반영해도 올해 말까지 국가 채무비율은 43% 이상으로 오른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낮다고 강조하지만 선진국들이 고령사회에 진입할 당시에는 우리처럼 채무비율이 높지 않았다.
우리는 남북 문제도 있다. 농사도 쌀 빼고 대부분 수입이다. 이런 상태에서 재정까지 흔들리면 국가신인도에 직접적 영향을 줄 것이고 이는 결국 후손들에게 부담을 준다. 돈을 어디에 쓰고 현 정부 끝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재정수지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이건 5년 정부의 책임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기본적 생활지원은 하되 나머지는 성장 지원에 써야 한다. 그래야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수 있다.
재정의 낭비 요인도 많다. 예를 들면 요즘 문제되는 민간단체 보조금의 경우 어디에 얼마를 쓰는지 관리도 안 된다. 이건 공무원들의 직무해이다. 불가피한 돈은 쓰되 제대로 쓰이는지 분명히 따져봐야 한다. 복지정책도 진짜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누수는 얼마나 되는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 저출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2005년부터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대책'을 통해 2015년까지 10년간 110조원의 예산을 썼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어떤가. 출산율이 더 떨어졌다. 이건 기본적으로 돈을 잘못 쓰고 있다는 얘기다.
-기본소득제, 증세론 어떻게 보는가.
▲예부터 나는 중복지하려면 중부담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런데 이를 자꾸 미루며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후세에 부담만 주는 것이다. 우선 기존 예산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고쳐주고 부족한 것은 증세로 가는 수밖에 없다. 증세를 하려면 부담스럽더라도 복지에 대해 이렇게 개혁하고 투명화하겠다는 다짐을 국민에게 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지금처럼 기본소득을 주기 위해 증세하자는건 말이 안 된다. 기본소득제가 자산ㆍ소득에 상관없이 전 국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주겠다는 건데 난 반대다. 재정의 부담을 떠나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발전한 동력은 오로지 사람이었다. 기본소득은 무임승차, 즉 일할 의욕을 꺾는 것으로 이는 결국 사회적 역동성을 해치는 일이다. 결국 일자리가 복지다. 교육훈련하는 데 정부가 돈을 쓰는 생산적 복지를 해야 한다.
-재계에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에 기업경영하기 어렵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현 정부가 들어서고 2년 새 최저임금을 29% 올렸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슬로 다운(성장둔화)'될 때 법적으로 강제하는 최저임금을 29%나 올린 것은 핵폭탄이다. 그 피해는 자영업자나 미성년 근로자에게 간다. 이들이 제일 먼저 일자리를 잃는다. 최저임금은 업종별로 차등화해야 한다. 고용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같이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는 취약계층 근로자 가구에 대해 현금을 지원해 주는 근로장려금이란 게 있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는 것보다 이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 GVC 개편이 화두가 되고 있다.
▲정부가 기업들의 리쇼어링을 독려하기 위해 보조금을 준다고 하는데 기업들은 돈 몇 푼 준다고 돌아오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노사관계, 노동관련 규제 등 기업 환경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탈(脫)중국 전략도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하면 안 된다. 기업에 맡기면 된다. 리쇼어링하겠다는 기업이 있다면 어떤 조건이면 하겠는지 묻고 그러한 조건을 만들어주면 된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인가.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한 것은 맞다.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인 이른바 '3050클럽'에 우리나라가 7번째로 가입했다. 국가의 경제력은 세계 10위 수준이다. IT산업을 선도하고 방탄소년단 등 K팝, K스포츠, K방역 등을 보면 위기관리 능력과 역동성 면에는 결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자만하면 안 된다. 우리는 자원이 없는 나라다. 소규모 개방경제다. 수출로 먹고 산다. 저출산ㆍ고령화로 빨리 늙어가고 있다. 그리고 바로 위에 최빈국 북한에 사는 2500만 동포를 가진 나라다. 이런 것을 고려한다면 선진국이라고 좋아할 때가 결코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의 외교 전략은?
▲코로나19 이후 스마트한 외교 전략이 절실하다. 한미, 한중, 한일 관계에 대해 특별히 신경써야 한다. 외교에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전략을 확인ㆍ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ㆍ중 패권 경쟁이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일 관계가 중요하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두 국가가 힘을 합쳐야 한다. 자칫하다 사면초가에 빠질 수 있다. 특정 외교 채널만 보지 말고 경험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정부와 기업의 역할은?
▲경제 체력을 보강하고 충격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려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사람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업 영역과 일하는 형태에 맞는 산업 육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때 정부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고 해서는 안 된다. 한 가지 걱정은 코로나19로 기업들이 어려우니 정부가 자금 지원을 많이 해주는데 이건 잘못하면 기업이 부실화할 수 있다. 이는 금융기관 부실로 연결되고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생각을 바꿔야 한다. 노동계도 무조건 해고시키지 말라고 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문 닫으면 소용없다. 노사가 같이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경영계도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 자금 지원을 해달라는 소리만 하지 말고 우선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경제단체나 기업들이 '일감몰아주기, 기술편취, 부당세습 등 안 하겠다'는 공정ㆍ투명 경영 방안을 만들어 제시해 국민과 노동계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래야 정부가 규제를 풀 명분도 생기고 노조의 동참도 이끌어 낼 수 있다.
■ 프로필
2012.04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2010.05 전북대학교 상과대학 무역학과 석좌교수
2005.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
2004.03 열린우리당
2004.03 ~ 2007.03 LG전자 사외이사
2003.06 서정법무법인 고문
2002.11 ~ 2013.12 삼정KPMG 고문
2001.08 ~ 2002.04 제4대 재정경제부 장관, 경제부총리
2000.08 ~ 2001.01 제4대 재정경제부 장관
1999.05 ~ 2000.08 기획예산처 장관
1997.11 ~ 1998.03 기아그룹 회장
1995.05 ~ 1997.08 제13대 노동부 장관
1994.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초빙교수
1991.05 ~ 1993.02 제11대 동력자원부 장관
1990. 제35대 재무부 차관
1988 ~ 1990.01 제7대 해운항만청 청장
1983. 경제기획원 기획차관보
1976. 경제기획원 경제기 획관
1963. 경제기획원 사무관
■ 학력
1997. 전북대학교 철학 명예박사
1988. 한양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1994.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석사
1968. 워싱턴대학교 세인트루이스교대학원 석사
1963.서울대학교 경제학
1958 전주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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