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나이 서른여섯의 한 젊은 예술가가 자신을 세상으로 오게 한 어머니 품에서 조용히 영면했다. 어머니는 죽음의 순간만이라도 평온하도록 정신병원에 있던 아들을 자신이 살고 있는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근처의 말로메성(城)으로 데려왔다. 고단하고 소외된 삶을 산 아들의 마지막을 그렇게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프랑스 남부 툴루즈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신체적 장애로 결국 가장 어둡고 암울하게 산 사람들과 함께 한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의 마지막 순간이다.
어머니 아델은 아들의 죽음 이후 그의 영원한 삶을 위해 노력했다. 화가의 삶이 영속하려면 그와 작품에 관한 기억이 존속해야 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을 스케치 한 장까지 모두 모았다. 진정한 컬렉터가 된 것이다. 어머니는 이를 미술관에 기증하기 위해 파리 등 여러 곳으로 찾아다녔다. 그러다 결국 아들이 태어난 툴루즈 인근 알비에 기증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로트레크미술관은 13세기 고성에 자리잡았다. 이곳은 1905년까지 가톨릭 주교가 머물던 성으로 시간을 머금은 붉은 벽돌이 인상적이다. 인근에는 로트레크가 태어난 성이 남아 있다. 어린 시절 자주 갔던 보스크성도 여기서 멀지 않다. 그곳에서는 로트레크의 어린시절 그림들을 볼 수 있다. 가족과 함께 했던 행복한 유년 시절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로트레크의 행복은 14세 무렵 사고로 멈추게 된다. 이후 이어진 아버지의 냉담함과 사회의 멸시를 로트레크는 오직 그림으로 풀어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다행히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었던 같다.
로트레크가 사람들에게 던지는 시선은 어머니가 자기를 바라보던 시선과 다르지 않다. 어머니에게 아들은 귀한 영혼 그 자체였다. 이런 믿음이 있어 로트레크는 자기만의 작업에 매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기와 비슷하게 취급받는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았을까.
로트레크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대상은 사람이다. 각자 개성이 드러나도록 직접 만난 사람들을 화폭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그는 귀족과 지식인, 예술가와 작가, 배우와 무희, 창녀와 난쟁이 등 다채로운 사람을 깊이 있게 바라봤다.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애썼다. 그의 작품에서 어떤 숨은 의도도 찾아낼 수 없다. 그저 그 사람이 느껴진다.
그때까지 예술의 소재로 다루기 힘들었던 사회 각 계층의 면면을 로트레크는 그대로 드러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진정한 현실을 찾아내려 애쓴 것이다. 편견의 대상이었던 그는 사람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깨뜨리는 데 한몫한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다.
로트레크가 영면에 든 해, 스무살의 스페인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작품 '푸른 방'으로 그를 오마주했다. 피카소는 로트레크로부터 영향받아 훗날 '아비뇽의 처녀' 같은 작품을 남기며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자리잡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불편한 육체에 갇혀 편견 그 자체로 고착될 수 있었던 로트레크.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예술가로 생각을 맘껏 표출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켰다. 아들을 평생 돌보고 사랑으로 감싸 안았던 어머니는 아들 먼저 보내고 30년이나 더 살았다. 그 시간은 온전히 아들을 위해 채워졌다.
그렇게 해서 로트레크는 우리 곁에 남게 됐다. 그만의 색채로, 포스터·일러스트 등 그래픽 예술의 선구자로, 미술사의 한 편에 독자적인 화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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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큐레이터·성북구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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