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 귀류(鬼柳)/김언희
밤비
내리는데
머리카락 같은 비
휘날리는데, 휘감기는데
귀류, 귀류, 비 맞는 귀신버들
기름한 잎잎이, 기름한
눈을 뜨는데
물 위에다
빗방울은 자꾸
못 보던 입술들을 피워 내는데, 뜰채로
뜰 수도 없는 입술들을
피워 내는데, 모르는
이름들이
실뱀처럼 내 귓속으로 흘러드는데, 밤비
내리는데, 비 맞는
귀신버들
잎잎이 살을 떠는 가지에 앉아, 너는
내게 자꾸 돌멩이를
먹이는데, 살도
뼈도 없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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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시인을 두고 '영매'라거나 '주술사'라고 부르는 일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비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실은 지극히 낭만적인 호명은 아무래도 시인과 시에 대한 과장된 욕망의 투사이거나 읽기의 실패를 자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좋은 시는 도무지 사람의 몸과 정신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는, 달리 말하자면 귀기라고 이를 수밖에는 없을 무언가가 분명 흐르는데, 이 시가 그렇다. 며칠 동안 봄치곤 바람이 매서웠다. 이 시를 읽으면서 한 달 전쯤 만난 몇 그루 버드나무를 생각했다. 당장 이 밤엔 비가 내리지 않지만 이 시를 읽고 나서 한동안 그 버드나무들은 '실뱀처럼 귓속으로 흘러드는' "모르는 이름들"에 '휘날리고 휘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살도 뼈도 없는" 내가 있는 것만 같았다. 통곡하려야 입도 없는 내가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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