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영의 청경우독] 팬데믹시대 '재난지원금' 포퓰리즘 아닌 정당한 권리
기본소득론자 판 파레이스 루뱅대 교수, AI·자동화 등으로 일자리 감소 불가피…기본소득은 꼭 필요한 제도
일론 머스크·오바마 전 대통령 지지
코로나19 세계적 확산세, 핫이슈로 급부상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국가가 조건 없이 매월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모든 이에게 어떤 사회적 활동도 선택할 수 있는 탄탄한 지지대가 될 것이다. 특히 양극화가 진행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미래 사회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도발적인 발언이 2018년 국내의 한 강연에서 나왔다. 발언의 주인공인 필리페 판 파레이스 벨기에 루뱅대학 교수는 기본소득에 대해 매우 강력하고 급진적인 아이디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세계적 경제 위기, 불평등, 불공정 분배, 일자리 감소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꼭 필요한 제도라고 강조한다.
벨기에를 대표하는 경제철학자 판 파레이스 교수는 1986년 출범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창립 멤버로 강력한 기본소득 옹호자다. 그의 선언은 '모두의 몫은 모두에게, 각자의 몫은 각자에게'라는 틀에 기초한다.
그의 저서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은 기본소득 교과서다. 그의 철학 기반은 다름 아닌 '실질적 자유'다. 천부인권이라 여기고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 본 자유를 실질적으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가 제기하는 문제점이다. 우리는 천부인권인 자유가 결정한 삶을 살고 있는가. 자유의지가 결정하는 대로 밥벌이 수단을 바꾸거나 버릴 수 있는가. 대안이 없다면 우리에겐 기본적으로 밥벌이에 대한 자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은 자본의 힘에 저항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 자유를 회복하려면 '교섭력'부터 높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기본소득론자들의 접근법이다. 개인이 누리는 현재의 풍요는 누적된 사회적 자본에 개인의 능력까지 더해진 결과다. 그러므로 교섭력 제고 차원에서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자본을 기본적으로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기본소득론자들은 주장한다.
이들은 특히 자동화, 인공지능(AI), 플랫폼 비즈니스 등 산업 생태계의 급변으로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재정 투입으로 만들어온 공공 또는 민간 일자리는 근본적 해법이 아닌 데다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지적한다.
기본소득론은 정책 이념화에 익숙한 한국의 환경에서 보면 사회주의, 더 나아가 공산주의적 발상으로 보일 법하다. '분배=보편복지=사회주의'라는 오랜 등식에 근거한 낡은 비판은 기본소득 개념이 국내로 도입된 2007년부터 줄곧 존재해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기본소득은 시장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같은 유명인사들로부터 지지받고 있다.
197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1916~2001)의 경우 "현 세대 소득의 90%는 이전 세대가 축적한 지식을 활용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현 세대 개개인의 기여가 아니라 인류가 지금껏 축적해온 공여의 몫이라면 그 몫은 마땅히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정치철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도 기본소득 지지자였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도 기본소득은 큰 정부가 지향하는 복지 행정을 대신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실물경제, 특히 민생경제를 위협하면서 한때 진영 간 논쟁 탓에 표류하던 기본소득이라는 의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충격을 완화하고자 곳간까지 털어 지원하는 방안들에 대해 잇따라 논의하고 있다. 이를 재난기본소득, 긴급재난지원금 등으로 개념화했다. 그리고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다. 불필요한 이념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새로운 국면의 기본소득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서는 진영 간 논쟁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논쟁은 단순한 복지 포퓰리즘 공방을 넘어 좀 더 깊이 있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타격을 받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한 '서울시 민생혁신금융 전담창구' 운영을 시작한 6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을 찾은 소상공인이 상담을 받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금민 소장이 펴낸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는 기본소득론을 총망라한 책이다. 금 소장은 2007년 기본소득을 앞세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바 있다. 금 소장은 기본소득이 우리에게 정당한 권리라는 그 이유를 철학과 정치경제학에서 찾는다. 이중적 소유권 이론을 주창한 18세기 미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페인(1737~1809)까지 소환해 '디지털 플랫폼 자본주의'의 현재와 기본소득 해법으로 제시한 공유지분권ㆍ공동소유형 모델에 대해 살핀다.
저자는 이어 기본소득이 기본 복지와 어떻게 다른지, 한국 정부의 직접 일자리 창출 정책의 한계가 무엇인지 분석한다. 나아가 '시간은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는가' '녹색 기본소득은 가능한가'에서 젠더(gender) 불평등 해소와 생태 위기 극복 가능성도 다룬다. 저자는 책에서 기본소득이 '누적된 사회적 자산의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배당'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판 파레이스 교수의 철학적 토대를 이어받아 현실 정치의 문제로까지 확장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나도 3700억 받을 수 있나"…26일부터 한도 없어...
부활절을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한을 통해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을 우려하면서 많은 이들이 아무런 법적 보호 장치 없이 하루를 살고 있는 만큼 그간 세계화에서 소외돼 더욱 고통 받아온 이들을 위한 기본소득을 고려해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 기본소득론이 도입된 지 약 13년이나 됐다.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구현할 길은 멀고 험할 것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