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타이거 킹: 무법지대'

[이종길의 영화읽기]역행하는 동물원…'호랑이 왕'의 메나주리
AD
원본보기 아이콘


"사냥꾼들에게 말하네. 총을 내려놓으라고. 그 호랑이는 사랑이 필요해. 정글을 뛰어다니게 해줘. 자기 땅을 돌아다니게 해줘. 물러서서 경외의 눈으로 지켜봐줘. 얼마나 아름다운 왕인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타이거 킹: 무법지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 '나는 호랑이를 보았네(I Saw a Tiger)'다. 가수는 조 이그조틱. 가사와 달리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동물원을 운영한다. 동물애호가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맹수들을 앞세운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 수익으로는 탄창을 산다. 한적한 호수에서 마구잡이로 총을 갈겨대며 으스댄다. 동성애자 남편들과 마약까지 복용하며 방탕한 생활을 즐긴다.

'타이거 킹: 무법지대'가 공개된 뒤 이그조틱은 추종자들이 생길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는 맹수들이 득실대는 우리 안에서 겁 없이 날뛴다. 호랑이를 애완동물처럼 쉽게 다룬다. 우리 밖에서는 자기를 초인적 존재로 포장하기에 바쁘다. 맹수를 이용해 인기와 권위를 얻으려고 발버둥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역행하는 동물원…'호랑이 왕'의 메나주리 원본보기 아이콘


고대 이집트 여왕 하트셉수트(기원 전 1508년~기원 전 1458년)도 비슷한 방식으로 위엄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를 만들고 표범ㆍ기린ㆍ곰 등을 키웠다. 이를 외국에서 온 사신이나 자기의 권위를 넘보는 신하에게 적극적으로 보여줬다. 흔치 않은 동물들을 태양의 자식만 가질 수 있는 상징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는 하트셉수트가 얼마나 대단한 권위를 가졌는지 단번에 알리는 방편이 됐다. 실제로 그의 집권 기간 이집트에서는 별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동물을 활용한 선전은 왕권신수설이 절정에 달한 17세기 유럽에서도 있었다. 프랑스 최전성기의 왕으로 '태양왕'이라고까지 불린 루이 14세(1638~1715)는 이국적인 동물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모았다. 자기의 권력이 지구 곳곳에 닿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였다.


그는 파리 교외 뱅센과 베르사유 궁전에 '메나주리(Menagerie)'라는 개인 동물원을 조성해 운영했다. 전자는 동물들 사이에 싸움을 붙이는 곳이었다. 신하들과 화합을 도모하거나 외국에서 사신이 왔을 때만 열었다. 후자는 귀족들만 구경하는 동물원에 가까웠다. 육각형 우리에 함께 모여 살 만한 동물들을 선별해 집어넣고, 한가운데에 이를 볼 수 있는 탑 파빌리온(Pavilion)을 세웠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역행하는 동물원…'호랑이 왕'의 메나주리 원본보기 아이콘


이그조틱도 자기의 동물원에서는 왕이었다. 난폭하게 굴어도 누구 하나 만류하지 않았다. 이때 동물보호론자 캐럴 배스킨은 이그조틱의 선정적인 돈벌이와 위험천만한 사육을 지적하며 법 개정을 촉구한다. 이그조틱은 이를 침략으로 간주한다. 배스킨의 사진이 붙은 마네킹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등 엽기적인 방법으로 적개심을 보인다.


뜨거운 감정의 충돌은 막장 드라마에서조차 보기 드문 긴장을 유발한다. 반전도 수차례 거듭된다. 배스킨 역시 이그조틱 못지않은 위선자라는 사실이 대표적인 예. 배스킨은 동물보호소를 형편없이 운영한다. 좁디좁은 우리에 맹수들을 가두는가 하면 자원봉사자들만 고용해 높은 수익을 챙긴다. 백만장자 남편을 살해하고 유산은 가로챘다는 의혹도 있다. 이그조틱이 청부 살인 혐의로 체포된 지금까지도 공방과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역행하는 동물원…'호랑이 왕'의 메나주리 원본보기 아이콘


이런 싸움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동물들이다. 대다수가 죽임을 당하거나 불법 거래됐다. 남은 짐승들도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동물원은 동물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그로부터 얻은 지식을 대중에 전달하는 공간이다. 그 뜻이 처음 펼쳐진 곳은 영국의 런던 동물학 정원(The Zoological Garden of London). 런던 시민들이 이를 줄여 'Zoo'라고 부르면서 지금의 동물원이라는 의미가 생겼다.

AD

이그조틱과 배스킨이 운영한 동물원은 'Zoo'보다 메나주리에 가깝다. 개인의 출세와 돈벌이를 위한 '동물수집'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싸움은 승자가 나올 수 없다. 동물들은 아직 우리에 갇혀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