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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 "모호하다고요? 그게 '언체인'의 콘셉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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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신유청 "끊임없는 거짓말로 타인 속이고 오해하는 이야기…죄의식·죄책감·양심 인간 내면에 초점"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벽난로가 타고 있는 어두운 공간. 두 남자가 있다. 의자에 결박돼 있는 남자는 '싱어'다. 싱어의 오른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다. 싸늘한 미소로 싱어를 쳐다보는 남자는 '마크'다. 마크는 실종된 딸을 찾고 있다.


2인극 '언체인'은 이렇게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다. 지난해 '녹천에는 똥이 많다' '그을린 사랑' '와이프'까지 내놓는 공연마다 호평받은 신유청 연출(39)의 작품이다. 그는 지금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가다. 지난 1월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받았다. '언체인'은 2017년 12월 초연, 2019년 4월 재연했고 오는 7일 세 번째 공연에 돌입한다.

극 중 마크와 싱어의 관계는 자주 뒤집힌다. 극 후반에는 되레 마크가 수갑이 채워져 결박당한다. 마크와 싱어의 대화는 관객에게 분명한 언어로 전달된다. 하지만 말 속에 담긴 의도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신 연출은 모호함이 '언체인'의 콘셉트라고 말했다. 그 모호함 때문에 앞선 공연에서 극이 난해하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 "모호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관객도 있고 모호함에 매력을 느껴 계속 파고들겠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는 것 같다. 모호함은 이 작품에서 배제할 수 없는 콘셉트다. 그 모호함이 더 많은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세 번째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신유청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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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와 싱어의 대화 의도가 바로 파악되지 않는 것은 마크의 기억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싱어는 마크의 압박에 숨기고 싶어하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고 괴로워한다. 둘의 심리변화 속에서 놀랄만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다.


"극은 끊임없는 거짓말로 타인을 속이고 또 오해하는 이야기다. 인간이 자신을 속이고 거짓말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어느 순간 거짓말을 하고 있는 자신의 본성에 놀라게 되지 않나. 거짓말 속에서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이 드러나고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게 되고, 또 그런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언체인'을 만들게 된 계기는 노재환 총괄 프로듀서(PD)가 제안한 몇 줄짜리 아이디어였다. 노 PD는 과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기억이 조각났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리극 형태의 간략한 시놉시스를 제안했다. 노 PD의 제안은 범죄의 실체를 파헤치는 추리극에 가까웠으나 신 연출은 범죄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보다 그 속에 있는 인간의 의식, 본성에 관심을 가졌다. 이를테면 죄의식, 죄책감, 양심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극은 단순한 추리극에서 고도의 심리극으로 진화했다.


신 연출은 재연 때 초연과 완전히 다른 공연이라고 할 정도로 변화를 많이 줬다. 이번 공연은 재연의 틀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모호함은 더 심화시켜 완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신 연출은 "초연이 행위에 중심을 뒀다면 재연에서는 행위보다 양심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뤘다"고 밝혔다. 내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공간적 배경도 비현실적 공간으로 바꿨다.


"초연 때 시간과 공간 배경을 현실로 설정했는데 원하는 캐릭터와 콘셉트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공감했다. 재연을 하면서 현실이 아닌 인물 내면에 있는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극작을 새로 했다. 누군가의 정신세계 또는 죄를 심판하는 사후 공간, 혹은 그런 공간일 수 있다는 착각이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꾸몄다. 시간이 역전되기도 하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죄들이 계속 기억나고 반대로 잊지 않아야 하는 기억들이 잊히는 그런 공간이다."

연극 '언체인'의 2019년 공연 장면  [사진= 콘텐츠플래닝 제공]

연극 '언체인'의 2019년 공연 장면 [사진= 콘텐츠플래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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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연출이 모호함이라는 콘셉트로 인간 내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인 듯하다. 그는 "(인간의) 내면은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늘 전복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방식도 자신(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한 듯싶다. "연출이 최상위에서 결정권자로 있다고 오해하는 동료들이 있다. 같이 바라보며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게 저의 책임을 교묘하게 떠넘기는 방식이긴 한데…. (웃음) 모두 출신이 다르고 연극을 배운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같이 보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려 한다. 이런 것에 흥미를 느끼는 배우들이 좋은 동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연출이 책임지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있고 배우들이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는 또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텍스트를 최상위의 가치로 둔다고 했다. 특히 작가와 합의가 된 부분을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충실하게 글을 무대에 올려놓는 작업을 한다라고 생각을 한다. 대본에 충실한 작업을 하는 것이다. 누가 연출을 하더라도 이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다면 이렇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한다. 저만의 스타일로 인해 텍스트를 해치지 않을까 고민하고 그래서 저를 최대한 숨기려 한다."


그래서 그는 작품에서 자신의 색깔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숨기려 한다고 했지만 어쨋든 최근의 일련의 작품들로 인정을 받고 수상도 하면서 어쩌면 의도와는 다르게 도드라져 보이는 연출가가 됐다.


"상을 떠나서 계속 작품을 하면서 배우들의 동선을 어떻게 할까라는 식의 공연 자체에 대한 고민보다 (내가 갖고 있는) 생각들에 젖어있는 그런 시간들이 좋은 것 같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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