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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혜의 그림으로 읽는 서양예술사]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다발', 진리·권력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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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1832~1883)는 시대를 앞서 간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은 거의 언제나 물의를 일으키고 몰이해에 부딪혔다. 하지만 마네를 싫어한 사람들도 그의 사물 묘사 능력만큼은 인정했다.


그를 혹평했던 비평가들은 '풀밭 위의 점심' 속의 벗어 놓은 드레스나 소풍 바구니, '올랭피아' 속의 꽃다발에 감탄했다. 마네가 그린 정물화 속 모란꽃은 가까이서 보면 뭉개진 물감일 뿐이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방금 정원에서 꺾어온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난다.

1879년 마네의 건강이 악화했다. 매독으로 신경마비가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그는 파리 근교 뫼동에서 온천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고생만 하고 1년 뒤 파리로 돌아왔다.


마네의 건강은 대작을 그릴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지인들과 편지를 주고 받거나 작은 정물화를 그리며 소일했다. 초기에 그렸던 복잡한 정물화가 아니라 접시 위의 레몬 한 알, 사과 한 알 같은 단순한 정물화였다.


'아스파라거스 다발'도 이 시기에 그린 정물화로 소품이지만 매우 아름답고 뛰어난 작품이다. 흰 바닥에 초록색 잎이 깔려 있고, 가는 버들가지로 묶은 아스파라거스 다발이 놓여 있다. 배경은 밤색으로 밋밋하게 칠해져 있다.

에두아르 마네 '아스파라거스 다발', 1880년, 46x55㎝, 발라프리하르츠 미술관, 독일 쾰른

에두아르 마네 '아스파라거스 다발', 1880년, 46x55㎝, 발라프리하르츠 미술관, 독일 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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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비쳐든 빛으로 아스파라거스 뿌리 부분이 하얗다. 머리 부분은 다소 어두운 연보랏빛을 띠고 있다. 푸른 잎과 연보랏빛 끄트머리는 아스파라거스를 흰 바닥과 구별해주며 싱싱한 느낌까지 부여한다.

마네는 물감을 팔레트에서 혼합하지 않고 직접 캔버스에 칠했다. 아스파라거스의 몸통은 얼핏 보면 연노랑이지만 자세히 보면 연두, 분홍, 보라 같은 색이 섞여 있다. 연보랏빛 머리 부분도 빨강, 파랑, 초록, 노랑이 섞여 있다.


이 즈음 인상주의에 빠져 있던 수집가 샤를 에프뤼시(1849~1905)가 마네의 아틀리에에 들렀다가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봤다. 에프뤼시는 러시아에서 건너온 유대계 사업가의 아들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우크라이나 남서부 오데사에서 곡물 사업으로 재산을 일군 인물이다. 그의 집안은 유럽 곳곳에 사업체를 갖고 있었다.


에프뤼시는 물려 받은 재산으로 미술품을 수집하고 예술잡지 발행과 예술 연구로 소일했다. 파리 최상급 사교계에 드나들던 그는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스완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마네가 그림 값으로 800프랑을 불렀다. 그러자 한량 에프뤼시는 통 크게 1000프랑짜리 수표를 써주고 갔다. 세련된 마네가 그대로 있을 리 만무했다. 마네는 작은 캔버스에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를 잽싸게 그려 메모와 함께 에프뤼시에게 보냈다. "당신이 가져간 다발에서 이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 1880년, 16x21㎝,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에두아르 마네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 1880년, 16x21㎝,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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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그림은 색채와 기법이 판이하다. 아스파라거스 다발은 밝은 색채를 다양하게 활용해 인상주의 정통 기법으로 그려졌다. 한편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는 단색으로 명암만 부각해 빠르게 그려졌다. 우연히 떨어진 것처럼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가 테이블 모서리에 걸쳐 있다.


이런 사연을 생각하면 두 그림이 나란히 전시되는 게 이상적이다. 하지만 두 그림은 현재 헤어져 하나가 독일 쾰른에, 다른 하나는 파리에 있다.


1890년대에 에프뤼시는 상징주의로 관심을 옮겼다. 그가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처분한 것은 1900년쯤이다. 이 작품은 독일로 건너가 파란만장한 여정을 시작한다.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의 이력은 비교적 단순하다. 에프뤼시가 죽을 때까지 갖고 있다 조카딸에게 상속돼 1905년 미술시장에 나

왔다.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는 결국 미술상 두 군데를 거쳐 파리 오르세미술관의 컬렉션이 됐다.


아스파라거스 다발은 파리의 미술상을 거쳐 독일로 건너갔다. 1903년 베를린의 미술상 파울 카시러(1871~1926)는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분리파(Secession·19세기 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회화, 건축, 공예 운동) 전시회에 내걸었다.


이 그림을 산 이는 베를린 분리파 의장인 인상주의 화가 막스 리베르만(1847~1935)이었다. 1933년 나치 정권이 들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유대인인 리베르만은 수집품들을 이전시켜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전시회에 대여한다는 핑계로 작품 14점을 쿤스트하우스 취리히로 보냈다. 작품들 가운데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다발도 포함돼있었다.


리베르만은 나치의 압력으로 모든 직을 내놓고 은거하다 1935년 별세했다. 독일 최고의 화가로 존경받았던 그는 베를린 미술계를 좌지우지했던 거물이었으나 나치의 감시 속에 장례식이 초라하게 거행됐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리베르만의 집과 컬렉션이 몰수됐다. 부인은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자 음독자살을 택했다. 그의 딸 케네는 1938년 남편·딸과 함께 독일을 탈출했다. 이들은 스위스에 들러 리베르만의 수집품을 찾아 미국으로 가져갔다. 케네는 1952년, 남편은 1955년 세상을 떠났다. 리베르만의 수집품은 외손녀 마리아 화이트의 소유가 됐다.

한스 하케 '마네 프로젝트 74', 1974년, 각 패널 80x52㎝, 마네 복제본 83x93㎝, 루드비히 미술관, 독일 쾰른

한스 하케 '마네 프로젝트 74', 1974년, 각 패널 80x52㎝, 마네 복제본 83x93㎝, 루드비히 미술관, 독일 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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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쾰른의 발라프리하르츠 미술관 후원단체가 화이트로부터 136만달러에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사들였다. 그림은 영구 대여 형식으로 발라프리하르츠에 걸리게 됐다.


겉보기에는 그럭저럭 잘된 결말 같다. 리베르만의 컬렉션 대부분이 나치에 압수돼 뿔뿔이 흩어졌으나 아스파라거스 다발은 외손녀가 갖고 있다 독지가들에 의해 독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후원단체를 만든 헤르만 요제프 압스(1901~1994)가 누구인지 알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압스는 나치 정권 아래서 도이체방크 은행장을 역임하면서 경제정책도 주도했다. 도이체방크는 탈취한 유대인 금융자본으로 몸집을 불리고 유대인 기업 강제 인수합병에도 힘을 행사했다.


압스는 유대인들로부터 강제로 빼앗은 기업들의 이사를 지냈다. 이들 기업은 2차대전 중 유대인·슬라브인 등을 강제노동에 투입했다. 압스는 종전 직후 전범으로 체포됐다. 그러나 석 달 만에 영국의 개입으로 풀려났다. 나치 정권의 경제 상황을 꿰고 있는 인물이라 쓸모가 많았던 것이다.


압스는 영국 점령지역의 재정 자문관을 거쳐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콘라트 아데나우어 서독 총리의 측근으로 재정 문제를 외교로 해결하는 데 탁월했다. 전후 서독 경제의 재건에 공헌해 '독일 경제 기적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였다. 그는 1955년 도이체방크 은행장에 올랐다. 그리고 은퇴할 때까지 여러 대기업의 이사를 지냈으며 세계은행(WB) 총재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1970년 쾰른의 한 출판사에서 압스의 나치 전력을 폭로한 동독 역사학자의 저서가 출간됐다. 압스는 저자와 출판사를 고소했다. 우파 판사들이 지배하는 법정은 압스의 손을 들어줬다. 출판사는 허위 사실 유포죄로 벌금 2만마르크를 선고받았다. 책은 배포 금지됐다.


그러나 역사 은폐·왜곡에 반대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계속됐다. 1974년 발라프리하르츠 미술관은 개관 150주년 기념으로 전시회 '프로젝트 74'를 기획했다.


전시회에 초대된 독일 태생의 아티스트 한스 하케는 '마네 프로젝트 74'라는 설치작품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글이 인쇄된 종이를 끼운 10개의 액자로 이뤄져 있다. 각 종이에는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소장했던 수집가들, 이 그림을 거래했던 미술상들의 전기와 사회경제적 지위, 작품 가격 등이 기록돼 있다. 물론 압스의 이력을 적은 종이도 포함돼있다.


전후 서독은 경제 재건에 박차를 가했다. 동시에 부끄러운 과거를 쉬쉬하고 기억에서 지우려 들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진보적인 예술가·지식인들이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자 서독 사회는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케는 원래 발라프리하르츠에 소장된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이젤에 얹어 10개의 액자와 함께 전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의도를 알게 된 미술관장이 이에 반대했다. 재계·정계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한 데다 미술관에 엄청난 도움도 주는 압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케는 결국 쾰른의 한 사설 갤러리에서 작품을 공개했다. 마네의 원본은 사용할 수 없었기에 복제품으로 대신했다.


마네 프로젝트 74는 질문한다. 예술이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우리가 명화 앞에서 무조건 감탄만 해도 되는지,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힘 있는 자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진리의 편에 설 것인지.


압스는 예술 후원자로 부유하고 우아하게 살다 1994년 90세로 생을 마감했다. 조형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하케의 작품은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시발점이었다.


예술사 저술가·경성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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