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6개월째…아들이 말했다 "아빠, 겁나 잘하고있어"
육아휴직 6개월차, 본지 배경환 건설부동산부 기자
둘째는 어린이집 보내지 않기로 결심…하루하루가 전쟁
"반찬도 무조건 직접 만들고 패스트푸드점도 안갔죠"
"지친 뒷모습에 큰 아이가 보낸 응원 듣고 '왈칵'"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전생에 죄를 지어야만 가질 수 있다는 아들 둘을 돌보기 위해 지난해 8월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그동안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큰 탈 없이 아이들 겨울 방학을 맞았다.
둘째도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데리고 있겠다는 호기로움은 여전하다. 내 인생에서 오롯이 아이들을 위해 24시간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를 품에 안고 큰 아이 학교와 학원, 체험학습장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기도 했다.
살은 빠졌다. 등교 전 하루도 빠짐없이 옷 타령을 하는 큰 아이와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집안 곳곳을 휘저어 놓는 둘째를 쫓아다니는 통에 애들 잔반으로 끼니를 해결한 탓이다. 내가 한두 끼만 건너뛰면 이틀에 한 번만 밥을 해도 되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것일 수도.
"역시 남자가 애를 보니…"라는 주변의 우려를 의식해 반찬 가게를 찾지도 않는다. 아이들과 패스트푸드 점에서 끼니를 해결한 적도 없다. "아무도 신경 안 쓴다"는 바깥 양반의 핀잔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들 옷 입히는 것은 물론 나 역시 옷 매무새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의류 사업을 하는 처형으로부터 20년 가까이 옷을 협찬(?)받고 있지만 여기에 더해 낮잠에 든 둘째 옆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찾아다니는 시간만은 놓칠 수 없다. 바깥양반이 동네에서 듣고 오는 "민준 아빠는 반찬도 직접 한다면서요?" "민준 아빠는 애 둘 아빠로 보이질 않아"라는 말로 내 노력이 인정받고 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큰 아이의 격려가 힘이 된다. 지난 여름 둘째를 등에 업고 가지를 볶던 중 무심코 뱉은 "나 잘 하고 있는 거 맞지?"라는 물음에 옆으로 다가와 "겁나 잘하고 있어"라고 답한 아이의 칭찬에 눈물을 왈칵 쏟았다.
하지만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고충을 쉽게 터놓고 얘기할 상대가 없는 점은 내내 아쉽다. 중간 중간 만나는 다른 아빠들에게 육아휴직 예찬론을 펼치고 있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들은 2018년 남성 육아휴직자가 50% 가까이 늘었다는 통계청의 결과는 현실과 멀다고 손사래를 친다. 휴직자 가운데 공무원만 빼도 그 수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큰 아이 학년에서 아빠가 육아휴직에 들어간 경우는 찾을 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장의 수입 감소와 향후 직장에서의 위치 불안이다. 2018년부터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휴직 후 첫 3개월만 해당돼 수입이 100만원 이하로 급감하는 4개월 차부터는 조기복직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남성 육아휴직 기간이 여성보다 유독 짧은 평균 6.7개월에 불과하다는 인구보건복지협회의 분석과 궤를 같이한다. 나 역시 휴직 이전부터 매달 붓던 적금을 중단하며 향후 1년간의 생활비를 모았지만 4개월 차부터 통장에 찍히는 수입을 보면 되레 복직이 기다려진다.
내 어깨를 으쓱하게 했던 "민준 아빠는 좋은 회사 다니나보네"라는 주변의 평가도 곱씹어 보면 안타까운 대목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남성 육아휴직자 가운데 절반 이상(56.7%)이 300인 이상 기업에 재직할 정도로 대기업 쏠림 현상이 뚜렷했다. 30인 이상 10.6%, 10인 이상 8.2% 순으로 사회적 인식은 아빠와 엄마의 '맞돌봄 시대'로 가고 있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현실적 문제만 해결된다면 남성 육아휴직이 양성평등 실현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도 보인다. 남성 중심의 기업 문화에서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남성들과 경력 격차를 겪게 된다. 남성들의 육아휴직 참여도가 높아지면 이 같은 남녀 경력 격차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취업난, 결혼 비용, 주거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 경력 단절 역시 출산을 막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늘고 있다는 남성 육아휴직이 출산율 회복으로도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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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둘째와 장바구니를 안고 땀을 흘리며 걷는 나에게 첫째 아이가 "아빠, 나는 나중에 아이를 낳지 않아도 돼?"라고 물었다. 엉뚱한 질문이겠거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유를 묻는 나에게 "아빠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라는 아이의 대답은 가슴을 후벼팠다. 무더위 속에 물 먹은 솜마냥 축 늘어진 내 어깨를 포착한 듯하다. 아이에게 "아니, 낳아도 돼. 앞으로는 훨씬 더 나아질 거야"라고 확신하며 답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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